세상사는 이야기

텃밭을 가꾸며

별꽃바람 2009. 6. 3. 16:22

 

올 초 직장의 근무처를 옮기고 여러 걱정을 했습니다. 출퇴근 거리가 멀고 생소한 곳이라 배울 것도 많아 많이 바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그야말로 정신없이 지나왔습니다.


그런 와중에 회사 공터에 텃밭을 가꾸기로 했답니다. 처음에는 삽질을 해서 손바닥 만하게 채소 몇 가지 길러 먹을 생각이었답니다. 그런데 함께 근무하시는 분이 트랙터를 빌려 공터 전체를 갈아 밭으로 만들었습니다.


기왕에 하는 것 나머지 땅이 풀밭이 되면 관리가 더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처음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고랑을 만들고 이것저것을 심다 보니 대농이 되었네요. 심어 놓은 것이 부추, 파, 치커리, 적치커리, 쑥갓, 적상치, 청상치, 참나물, 들깨, 겨자채, 방아, 완두콩, 고추, 토마토, 방울토마토, 오이, 3가지 호박, 고구마, 참외, 수박, 옥수수, 홍당무, 가지, 케일 등 그야말로 백화점입니다.


이게 잘 될지 의심도 되었지만 정성을 들이다 보니 예상외로 아직까지는 풍작이네요. 주변에 살구, 뽕나무, 다래, 산수유, 모과, 매실나무까지 있어 더욱 풍요로운 환경이랍니다.^.^


이들을 가꾸고 수확하느라 정신없이 바쁘지만 딴 생각을 덜 하게 되니 참 좋네요. 작은 채소를 가꾸면서 생명의 소중함과 수확의 기쁨을 늘 맛봅니다. 주변에 작은 것이지만 나누어 주면서 더 큰 행복을 얻기도 하고요.


자연 속에서 산다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는 것 같습니다. 밖에 뻐꾸기가 찾아 왔군요. 정겨운 소리입니다. 나 자신이 자연의 일부분임을 느낍니다. 교만하여 만물의 영장 운운하지만 결국 한 떨기 꽃잎처럼 시간이 가면 자연으로 돌아갈 뿐이지요. 남는 것은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여 만든 업으로 가득한 영혼이지요.


 

제가 가꾼 텃밭의 일부 모습입니다.^.^

 

 텃밭을 가꾸다 보면 가끔은 철학적인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네 삶의 끝은 껍질은 썩어 없어지고 한 생의 업이 보태어진 새 영혼의 씨앗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갑자기 채근담의 첫 구절이 생각나네요.


棲守道德者,寂寞一時.依阿權勢者,凄凉萬古.

서수도덕자,적막일시.의아권세자,처량만고.

達人觀物外之物 思身後之身,寧受一時之寂寞,毋取萬古之凄凉.

달인관물외지물 사신후지신,영수일시지적막,무취만고지처량.

도리를 지키면서 사는 사람은 한 때 적막하지만 권세에 의지하여 아첨하는 이는 영원토록 처량하다.

깨달은 사람은 사물의 밖에 있는 사물을 보며 자신의 뒤에 있는 자기를 생각한다. 차라리 한 때의 적막함을 겪을지라도 영원히 처량함을 당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