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에 성내면
이 글은 김태국한의사가 93년부터 부산일보에 "한방의 허실"이란 제목으로 3년째 매주 연재하였던 것입니다.
더위에 성내면
예전에는 더워도 이렇게까지는 덥지 않았다. 나이 드신 분은 다 기억하시겠지만 겨울에 사나흘 바짝 춥고 나면 날이 풀려 이른바 三寒四溫이요, 여름에도 사나흘 덥다 싶으면 다시 사나흘은 시원해지는 三暑四冷이 우리 나라의 전형적인 날씨였다. 그런데 지구가 바뀌긴 바뀐 모양이다. 이렇게 열흘 내내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에어컨 없던 시절에 비해 호들갑을 떨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볼 수는 있겠지만 역시 심하긴 심하다.
더위를 안 먹으려면 첫째가 朝夕을 꼭 챙겨 먹어야겠다. 입맛 없다고 대충 걸렀다가는 체력이 부쳐 더위를 이기지 못한다. 무슨 음식이든지 좋으니 요기를 하고 움직여야겠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여름 음식으로 먹던 외, 수박, 밀가루 음식 등은 성질이 약간 찬 데 가까우니 자연스레 더위를 이기는 데 도움이 된다. 이 땅의 혜택이요 선조의 지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감정 조절이다. 최근에 어떤 유명 인사가 평소에 혈압이 좀 있다 뿐이지 체격이 좋아 젊은 사람들이 오히려 부러워할 정도였는데 갑자기 세상을 버린 일이 있었다. 다름 아니라 아침에 사무실에 출근했는데, 부하 직원이 이번에 자기와 동급의 자격증을 딴 탓인지 요즘 약간 기가 세어지는 듯하더니, 이날은 아침부터 사소한 일에 말대꾸를 하는 품이 영 비위가 거슬려 벌컥 화를 내버렸다. 그게 그분의 마지막이다. 한 순간에 이렇게 생명이 왔다갔다하니 정말 주의해야 되지 않겠는가!
한의서에 辟積於夏하면 使人煎厥이란 말이 있다. 여름에 열 받으면 더 잘 넘어간다는 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란 말과 비슷하다. 부인들 치마가 접어지는 모습이 辟積인데 치마 주름 잡듯이 감정이 우리 몸을 옭아맨다는 뜻이다. 더구나 여름은 우주 공간에 열이 제일 많을 때라 조금만 기분이 언짢아도 숨이 가쁘고 땀이 난다. 그런데 성을 왈칵 내든지 긴장을 많이 하든지 노력을 과하게 하든지 하면 사람으로 하여금 煎厥이라, 찌고 쪄서 열이 그만 위로 기어올라가 가령 뇌에 혈관이 막히든지 터지면 급사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수탉도 보통 때는 털이 곱상하다가도 싸우려고 맞서 있을 때는 깃털이 바짝 선다. 하물며 가장 예민한 사람은 어떻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