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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피를 뽑으면 좋은가?

별꽃바람 2010. 7. 13. 23:57

이 글은 김태국한의사가 93년부터 부산일보에 "한방의 허실"이란 제목으로 3년째 매주 연재하였던 것입니다.

 

 

나쁜 피를 뽑으면 좋은가?

 

부항 요법은 유리컵처럼 생긴 기구로 공기를 빨아들이는 일종의 물리요법이다. 이것으로 피를 뽑아 내기도 하고 인위적으로 멍들게 하여 진통 효과와 국소의 혈액순환 촉진을 유도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항간에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신경통, 근육통을 막론하고 아픈 자리마다 한 번에 한 사발씩 아까운 피를 뽑아 빈혈을 일으키거나 탈진시키는 일이 보고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피를 활동시키는 것은 기운이니 혈액순환과 혈관 운동을 왕성하게 하려면 기운을 차려야지 피만을 빼서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렇게 부항 요법을 맹신한 나머지 피를 뽑는 것을 능사로 여기는 수가 있고 혹은 다쳤을 때 피를 빼지 않으면 무슨 부작용이나 있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들이 있어 이 글을 쓴다.

부항 붙여 나오는 피는 나쁜 피가 아니다. 흔히 타박상을 입거나 삐어서 붓고 아프니 나쁜 피를 좀 뽑아 달라 하지면 피가 몸 구석구석을 한바퀴 도는 시간이 불과 25초라는 걸 생각하면 살아 있는 몸은 잠시도 쉬지 않고 피가 순환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피가 멈추어 흐르지 않으면 그 조직은 조만간 썩어 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다쳐서 붓고 아프고 멍든 그 자리도 피 흐름이 좀 더디다 뿐이지 말 그대로 나쁜 피가 고여 있는 게 아니므로 시간이 지나면서 회복되게 된다.

또 멍이라는 것도 다쳤을 때 순간적으로 약간의 출혈이 있었던 것이 피부 조직에 베어 들어 시퍼렇다가 차츰 주위로 퍼지면서 연해져서 일주일쯤 지나면 저절로 완전히 흡수되어 버린다. 부항으로는 이렇게 베어 든 멍을 제거할 수도 없거니와 제거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가령 골절 환자가 두어 달 후에 골절도 잘 접합되고 일정 기간 물리치료로 완쾌되었을 때 이 사람은 그렇게 몹시 다쳤어도 피 한 방울 뽑지 않고 아무런 부작용 없이 잘 나았지 않은가?

피를 뽑는 것은 어디까지나 모세혈관에 침을 찌르든지 부항을 강하게 빨아들여 생피를 인위적으로 출혈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령 일시적으로 효과가 났다면 이렇게 피가 날 정도로 강한 신경 자극을 가했기 때문이지 피를 뽑았기 때문이 아닌 것이다.

소중한 피를 뽑지 않고도 아픈 곳을 주무르든지 따뜻하게 찜질하든지 침을 놓는 것 자체가 신경 자극과 함께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