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을 알고 짓자
이 글은 김태국한의사가 93년부터 부산일보에 "한방의 허실"이란 제목으로 3년째 매주 연재하였던 것입니다.
한약을 알고 짓자
우리 나라도 의료보험이 실시되어 부분적으로는 저렴한 비용으로 진단 및 치료를 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병원에 입원해서 필요한 검진을 받다 보면 고가의 검사비가 들기도 하고, 심지어 1제(20첩)에 8-12만원 하는 한약값조차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아직 많다.
최근 부산의 모 건재 약국에서 한약 1제에 3만 5천원이라고 명함 크기로 부산 남구 일대에 뿌려, 많은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예가 있었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소행이긴 하나 순수 약값만 해도 1제에 평균 4-10만원이 들고 기타 진찰비, 처방료, 조제료 등을 생각할 때 얼토당토않은 값이다.
이 세상에는 아파도 치료비 걱정하지 않는 나라들이 있으며 남을 치료하는 직업이나 기술로 큰 돈을 벌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는 나라들도 있다. 이게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의료의 질이다.
필자는 한의대 재학 중에도 더러 처방을 내어주곤 했는데 한번은 급성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걷지 못하는 소녀를 일주일만에 걷게 한 일이 있었다. 그 당시는 그게 얼마나 가슴 뿌듯했던지 정말 의사가 다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졸업 후 생각해 보면 참 무모했다는 생각이 든다.
의사와 돌팔이의 차이는 치료율과 부작용 여부에 있다고 하겠다. 돌팔이도 고친다. 그러나 의사는 열에 여덟 이상을 고친다면 돌팔이는 다섯 이하를 고친다. 또 의사는 비록 못 고치는 환자라 할지라도 도리어 상하게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돌팔이는 여차하면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을 항상 안고 있으며, 그래 놓고도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조차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그러므로 병의 이치를 잘 아는 의사에게 진료를 맡기는 것이 가장 안전하기도 하고 오히려 치료비를 절약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우리 의학은 이전부터 집안의 어르신들이 책을 보고 더러 처방을 내셨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쓸 수 있는 약의 한계를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부작용을 내는 일이 거의 없었다. 요즘은 정규 한의사가 아닌 건재 약국이나 양약국에서도 한약을 지으며, 한의사를 사칭한 떠돌이 돌팔이들도 곳곳에 있으므로, 서로 조심하여 같은 값이면 부작용을 최소한으로 줄이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