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은 술안주에 안 맞다
이 글은 김태국한의사가 93년부터 부산일보에 "한방의 허실"이란 제목으로 3년째 매주 연재하였던 것입니다.
감은 술안주에 안 맞다
중국에서는 술안주에 감을 내지 않는 관습이 있다. 그 이유를 알아보자.
술이란 건 우리 정신과 육체를 흥분시키는 성질이 있어 흥을 돋구어 준다. 그러므로 기분이 좋을 때 말도 적당히 하면서 술을 마시면 우리 기분과 술 성질이 잘 맞아떨어져서 술도 잘 받고 깨기도 잘 한다. 반면에 기분이 나쁠 때 억지로 마셔 놓으면 술맛도 안 나거니와 주인이 감정을 잔뜩 오그리고 있으니 신진대사도 오그라져서 술기운이 잘 발산되지 않아 다음날 숙취로 고생하기 쉽다.
그런데 감은 떫은 맛이 있기 때문에 역시 수렴하는 성질이 많아서 술기운이 잘 퍼지도록 하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흔히 감을 많이 먹으면 변비가 되기도 하고, 위장이 약한 사람은 감 몇 개에도 소화불량이 되기도 하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것도 그 사람이 약하다면 감 정도에도 장이 수렴해서 대변을 잘 내보내지 않게 되든지 약한 위장의 소화 활동이 억제되기 때문이다.
술과 감, 변비와 소화불량을 이렇게 말하면 쉽다. 그러므로 감을 조심해야 될 사람도 있고 감 정도에는 끄떡도 않는 사람도 있으니 감이 떫은 맛으로 수렴한다는 성질만 알고 있으면 각자 알아서 먹으면 될 것이다. 이런 것을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감은 어디에 좋고 어디에 안 좋고 어떤 체질은 받고 어떤 체질은 먹으면 안된다고 못박으면 근거가 없어서 기억은 할 수 있어도 이치가 잘 인정되지 않는다.
한의학은 본디 이런 식으로 이치에 입각해서 모든 현상을 밝히고 각종 병을 치료하는 의학이다. 요즘은 양약의 부작용을 겁내서인지 민간요법이 많이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그게 왜 그런지 분명히 알고 사용하면 좋겠는데 뭐에는 뭐 쓰라고만 하고 납득할 만한 이치가 없으면 그야말로 민간요법이지 의학이 아닐 것이다.
예를 하나 더 들면, 쓴맛이 강한 것일수록 염증을 잘 식힌다. 익모초가 쓰고 웅담이 매우 쓰다. 그러므로 염증이 있다 해도 그 원인을 찾아 치료하는 것이 원칙인 것을 염증도 없는 사람이 익모초나 웅담을 보약으로 알고 남용해서는 안되겠다. 우리 몸은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 생명 현상이기 때문에 모든 염증을 달래는 약은 몸을 식히므로 기운이 손해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