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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별꽃바람 2012. 2. 16. 14:46

노자 도덕경 해설 입력 완료 기념으로 써 봅니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라고 불리어지는 것이 가능한 도는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이름이 지을 수 있는 것은 이미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노자 도덕경의 1장 첫 머리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 글도 해석하는 이에 따라 완전히 의미가 달라지기도 하지만 거의 위에 번역에 가깝습니다. 물론 번역만으로는 그 의미를 알기 어렵습니다. 이 1장은 원문에서는 1장이 아니랍니다.

 

제가 학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노자도덕경은 왕필이 주석한 왕필본과 비단에 쓰인 백서본과 죽간에 쓴 것이 발견된 죽간본 세 가지가 있답니다. 이중 죽간본이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데 각 문헌에 쓰인 단어나 내용이 조금씩 상이한 면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도덕경을 해설하는 사람에 따라 접근 방식이 다른데 그건 아마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관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도덕경처럼 난해한 책은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각설하고 위 구절을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불교에서 유일한 진리로 제행무상을 이야기하지요. 위 구절도 그 뜻으로 해석하면 간단합니다. 즉 세상의 모든 것을 관통하는 어떤 법칙이 있다고 하죠. 그것을 도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그것은 이미 그러한 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언어로 정의하는 순간 명칭으로 한정되기 때문에 그의 성격이 제한된다는 것이죠.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와 같은 논리도 것이 그와 같은 것입니다. 세상의 진리와 이치를 설하고, 의미 있는 삶을 주창하는 주옥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진 경전들을 갖고 있는 종교죠. 그러나 특정한 이름으로 한정되었기 때문에 절대 선을 논한 경전들이 편협한 논쟁의 대상으로 추락한 것이지요. 수많은 종교 전쟁은 그런 명칭에 의해 한정된 탓입니다.

 

마찬가지로 두 번째 구절의 내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름명자를 보시면 저녁석(夕) 밑에 입구(口)로 되어 있죠. 저녁에 어두워지면 눈으로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입으로 부른다는 의미랍니다.^.^

 

하여간 특정한 이름으로 정해진 존재는 진정한 존재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저의 이름이나 아이디를 생각한다고 가정합시다. 그건 제가 아니라 제가 남긴 이미지일 뿐입니다. 저를 가장 잘 아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자주 이런 말을 합니다. ‘때를 너무 세게 밀지 마라. 그건 얼마 전까지 너의 일부다.’^.^ 진정한 나는 무엇일까요? 손, 발, 심지어는 심장이 없어도 사람은 살 수 있습니다. 나는 물질적인 존재일까요? 아니면 종교에서 말하는 영혼?

 

그것을 안다면 깨달은 사람이겠지요. 진아를 알려는 노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구도자가 추구하던 것이니까요. 하여간 분명한 것은 항상 된 나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순간에도 이산화탄소가 내 코를 통해 나가고, 새로운 산소가 들어와 나를 형성하고 있으니까요.

 

도덕경 첫 머리에 이 문구를 넣은 도인의 생각을 추정해 봅시다. 아마도 무상성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듯합니다. 서양인들은 사물을 명사로 보고, 동양인들은 동사로 본다고 하죠. 이 도덕경의 첫머리에서 말하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의 이치일 것입니다.

 

특정한 것에 집착하지 말고 살라는 의미겠지요. 이 글을 쓰는 동안 제가 보유한 주식이 보란 듯이 폭락하고 있네요.^.^ 주식시세가 순식간에 움직이듯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제가 돈을 벌지 못합니다. 돈을 벌려면 돈 밖에 몰라야 한다는데 도덕경이나 연구(?)하고 있으니.

 

욕심 부리지 말고 너도 없고 나도 없고 모두가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으로 살면 편할 듯합니다. 인생 별것 아니죠. 과거의 내가 오늘을 만들고, 오늘의 내가 내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항상 변함없이 존재하는 나는 없습니다.

 

모두 행복하십시오.

여러분들이 행복하면 저도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