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김태국한의사가 93년부터 부산일보에 "한방의 허실"이란 제목으로 3년째 매주 연재하였던 것입니다.
손이 더운 사람 찬 사람(1)
손이 덥고 찬 것으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왜 한의사들은 진맥할 때 양 손바닥으로 환자의 손을 덮어서 손등과 손바닥이 더운지 찬지 같은지 다른지부터 먼저 보려고 하는가? 왜 어떤 사람은 사시사철 손이 차서 악수하기 미안해하며, 또 어떤 사람은 손발에 열이 나서 찬물에 담그거나 차가운 벽에 갖다 대기를 좋아할까?
보통 사람은 여름에는 손이 덜 따뜻하고 겨울에 손이 따뜻하다. 이것은 확실히 바깥 기온의 영향이다. 체온은 우리 몸 안에서 항상 만들어지고 있는데, 여름은 열이 많은 계절이라 우리 체온도 덩달아 올라가기 쉬우므로 내뿜어 버린다. 땀 흘리는 것도 이것이다. 이렇게 체온을 잘 발산하므로 손발이 그리 따뜻하지 않다. 반면에 겨울에는 우리 몸이 보온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체온을 많이 내뿜지 않고 거두어 간직하므로 손발도 비교적 따뜻하다.
그런데 만일 체온을 잘 배설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가슴도 잘 답답하고 숨도 잘 가쁘며 여름이라도 손바닥이 남보다 따끈따끈할 것이다. 왜 체온 배설이 잘되지 않을까?
가령 마음이 초조 불안하고 번민이 많든지 세심하고 예민하여 매사에 긴장을 잘하는 사람은 그런 감정 때문에 자체적으로 열이 잘 생긴다. 본디 열이 생기면 자연히 발산이 촉진되게 되어 있다. 그러자면 우리 기운이 머리끝에서 발까지, 내장에서 피부까지 오르락내리락 들락날락하는 정상 활동을 해야겠는데, 이런 사람은 그 감정 성질상 펴는 감정들이 아니고 오그라뜨리고 긴장시키므로 열이 생겨도 발산이 잘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손바닥이 더운 사람은 이러한 감정에 너무 얽매어 살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 조심하도록 하자. 손이 더울 때 벌써 내장이 더워져 있다는 것이고 이렇게 속으로 자꾸 열을 내기만 하고 배설을 하지 못하면 저항력도 떨어지고 영양도 말라지니 폐결핵, 협심증, 당뇨병 등 반갑잖은 병들이 찾아오기 쉬울 것이다.
반면에 손이 찬 사람은 초조 불안을 지나 이제는 실망, 낙심, 좌절, 불안 공포의 감정이 더 많아지지 않았는지, 그래서 체력도 많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알아볼 일이다. 사람이 죽으면 식고 식으면 죽는 법인데 어떻게 하든지 마음을 살려야 할 것이다.
이상은 감정에 대해 말하였지만 단순히 소화기 계통이 좋지 않아 손이 차거나 열이 나거나 손에 땀이 많이 나는 경우도 흔히 있다.
손이 더운 사람 찬 사람(2)
우리가 생기발랄한 것은 팔다리에 제일 잘 나타난다. 운동회때 보면 겉으로 듬직하게 보이는 아이보다 겉보기에는 야윈 것 같아도 잘 뛰는 아이가 더 충실할 수도 있다. 우리의 손발은 나무로 치면 가지에 해당되어 바람이 불면 가지가 먼저 흔들리듯이, 또 뿌리의 영양 상태가 가지와 잎에 잘 나타나듯이 우리 내장의 활발한 정도가 손발에 잘 나타나서 건강한 사람은 팔다리에도 힘이 솟고 손발의 온도도 적당하다.
그러므로 가령 좀 허약한 사람이 감정으로 충격을 받든지 찬 음식을 먹어서 체하든지 하면 갑자기 얼굴이 노래지면서 팔다리에 힘이 쭉 빠져 말도 나오지 않고 일어서기는커녕 앉은자리에서 한참 동안 꼼짝을 못하는 현상을 경험한다. 이렇게 우리 몸은 한 식구로서 내장 따로 팔다리 따로 생각 따로 말 따로가 아닌 것이다.
내장 가운데서도 특히 위, 대소장, 췌장의 상태가 손발바닥에 잘 나타난다. 그것은 이 장기들이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을 소화 흡수하기 위해서 주기적으로 열심히 활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배속이 더운 사람은 손바닥에 열이 잘 나타나고 속이 차가운 사람은 손바닥도 잘 차가워진다.
배는 더워도 탈 식어도 탈이다. 식었다는 것은 기능이 이미 약해져 있는 것이고, 잘 더워진다는 것은 음식을 소화 흡수하는 일이 힘겨워 억지로 소화는 될 망정 열도 나고 땀도 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손이 찬 사람은 대개 소화 기능이 활발하지 않아 잘 체하든지 입맛이 없는 편이며, 손발이 화닥거려 차가운 벽에 갖다 대는 사람은 과식하는 습관이 있거나 술, 육류, 단 것, 찬 것을 즐겨 소화 기관이 이제 약해지고 있는 중이다. 이때 조심하지 않으면 이 사람도 소화불량과 체력 저하를 조만간 경험하게 된다.
손바닥에 유난히 땀이 많은 사람은 왜 그럴까? 이 땀은 손바닥 피부에 나타났을 뿐이지 내장이 먼저 땀을 흘린 것이다. 가령 열심히 활동하다가 지칠 무렵쯤 되면 땀이 나듯이, 내장이 과도하게 일을 해도 지치지 않으면 열은 내어도 땀은 나지 않으나 이제 좀 약해져서 슬그머니 지칠 때 속땀이 바깥 손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장에 부담이 많은 사람은 소화 활동으로 열을 냈다가 지쳐 식었다 할 때 땀이 많이 나게 된다.
또 신경 활동으로도 땀이 나는데, 긴장과 흥분, 당황할 때 우리가 손에 땀을 쥐는 것을 흔히 경험한다. 신경이 예민하고 감정 기복이 심한 중고등학생 가운데 손바닥에 땀이 많은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치료에 임해서는 신경도 보고 위장도 보고 체력도 참고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