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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건강의 적

별꽃바람 2010. 7. 14. 00:12

이 글은 김태국한의사가 93년부터 부산일보에 "한방의 허실"이란 제목으로 3년째 매주 연재하였던 것입니다.

아이들 건강의 적

 

병의 종류야 많지만 건강의 적을 원인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그리 복잡할 것도 없다. 밖으로는 추위 더위 습기 등에 노출되든지 유행 공기에 감염되는 것, 외상 등이고 안으로는 각종 불규칙 식사, 불규칙 생활, 과로 그리고 정서 불안정이다.

시대에 따라 질병 양상도 많이 달라진다. 지금은 영양실조와 이로 인한 각종 질병은 그리 없다. 여름에 더위 먹고 겨울에 얼어서 되는 병도 드물다. 오히려 음식은 풍족하나 섭생은 마음대로라 탈내는 경우가 많고, 아이나 어른이나 지금은 대개 바쁘고 경쟁적인 세상이라 마음의 병이 제일 많다.

어머니가 예민하여 임신 중에 놀라고 초조불안하고 언짢은 일이 자주 있었다면 그 아이는 대개 약하게 태어나기 쉽다. 한배로 난 형제간에 체력이 차이 나는 걸 보면 짐작이 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잔병치레 정도가 아니라 소아의 근시 원시 축농증과 나아가서 자폐증 백혈병 등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출산하면 잘 보호하고 지도해야겠다. 어린아이를 부주의하게 끄떡끄떡 들든지, 잘못을 너무 즉흥적으로 나무라고 때리든지, 아이 앞에서 큰소리로 부부 싸움을 하든지 하면 아이가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고 충격도 받는데 이게 누적되면 주의산만한 아이, 고집쟁이, 짜증 잘 내는 아이, 예민한 아이, 둔한 아이가 되기 쉽다.

‘누굴 닮아 저럴까?’ 하는 말은 무책임하다. 건강하게 태어나도 얼마든지 이리 된다. 그뿐 아니다. 정서적으로 안정이 잘 안되는 아이는 신경이 약해 멀미도 잘하고 편식도 흔히 하므로 저항력이 약해져서 감기가 잦거나 잘 체하며 혈색이 노랗거나 창백한 허약아가 되기 쉽다.

이제 용돈 받아 제 발로 과자 가게에 다닐 무렵쯤 되면 단 것, 찬 것을 먹어서 몸을 상하는 게 제일 문제다. 단 것은 입맛만 떨어지는 게 아니라 아예 위장을 게으르게 만들므로 건강에 매우 불리하다. 찬 것도 말할 것 없이 해로운데 요즘은 어린애에게 찬 우유로 키우는가 하면 한겨울에도 하드, 아이스크림, 찬 음료수를 흔히 먹으니 역시 위장이 견디지 못한다. 어른들이 처음에는 차가운 맥주를 좋아하지만 자꾸 먹다 보면 찬 맥주만 먹었다 하면 배아프고 설사하는 것처럼, 건강할 때는 찬 것에 견딘다는 말이지 우리 몸속을 식히는데 좋을 리가 없다.

‘아이들 찬 것, 단 것 안 먹이고 어떻게 키워요?’ 하시는 분이 많다. 그러나 찬 날씨도 아닌데 저항력이 약해서 걸핏하면 감기 들고 또 잘 낫지도 않으며 이게 만성 편도선 축농증 중이염에 기관지 천식까지로 연결되어 천진한 어린 시절을 쓴 약 먹고 아픈 주사 맞던 기억으로 채울 수는 없지 않은가? 부모도 병 치다꺼리한다고 말이 아니다.

육류가 문제되기도 한다. 육류는 양은 적어도 영양은 많다. 그러므로 자칫하면 비만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또 소화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러므로 너무 일찍이 육류를 권하지 않는 게 상식이다. 설사 체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위가 애를 먹어 열을 내므로 꼬마 아가씨가 자꾸 배를 까뒤집고 찬 벽에 대면서 잔다든지 손발이 후끈거리든지 입냄새가 나고 편도선이 잘 붓는 것은 대개 위장 부담과 관계가 많다. 다리 아프다는 아이도 성장통으로만 볼 게 아니라 위장 부담은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중고등학생은 공부에 대한 부담이 제일 문제이다. 어떤 고등학생이 알레르기 비염으로 매우 고생하고 치료도 여러 달 받았으나 크게 호전되지 않았다. 그런데 대학 시험에 합격하고는 그만 슬금슬금 나아지기 시작해서 언제 그랬느냐는 듯 지금은 멀쩡하단다. 입시에 대한 부담감이 병을 부르고 그게 없어지니 병도 물러가 버린 것이다. 알고 보면 병이란 게 이렇게 얼토당토않은 면이 있다.

자녀 교육에 제일 스트레스 받는다고 흔히 이야기한다. 그러나 가령 잔소리하고 꾸짖다 보면 ‘이 병신아, 바보야, 이런 자식 처음 보았다’ 등등 아이들 인격을 무시하는 어휘도 무심코 나오는 건 부모 마음이 벌써 초조하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마음의 병이라는 게 별 것 있겠는가? 그저 어머니 아버지 금실 좋고 아이들 지도할 때 말만 앞세울 게 아니라 어른이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고, 아이들인 만큼 시행착오를 인정해 주고 오히려 격려해 줌으로써, 아이가 부모님 은혜에 자연적으로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면 따로 마음의 병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