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읽고

별꽃바람 2006. 4. 3. 11:50
 

사랑후에오는것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변하지 않는 사랑을 그리고 있다. 사랑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것은 귀하다. 장미는 가시가 있어 더 아름답다. 쉽게 얻어지는 것은 덜 소중하기 마련이다. 귀한 것은 얻기 어렵다. 시들어가는 꽃을 안타까워하듯이 멀어지는 사랑에 괴로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귀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사랑은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을 해야 지속될 수 있다.

2005년은 해방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가 일본이다. 우리에게 있어 오랜 아픈 역사와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일본은 늘 저 멀리에 있다. 기성세대는 과거 기억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신세대들은 다양한 문화적 교류를 통해 서로의 간극을 좁히고 있다. 한쪽에서는 한류의 물결이 일고 한쪽에서는 혐한반일 정서가 공존한다.

소담출판사에서는 2005년 ‘한일 우호의 해’를 맞이하여 문화적인 합일점을 찾는 기획을 하였다. 두 나라를 대표하는 인기 작가인 공지영과 츠지 히토나리가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을 공동집필하도록 한 것이다. 두 사람의 소설은 한겨레신문에 ‘먼 하늘 가까운 바다’로 연재 되었고 소담출판사의 재편집을 통해 이 소설로 거듭났다.

공지영은 ‘봉순이 언니’로 대표되는 인기 작가이다. 섬세하고 수려한 문장으로 젊은 독자의 감성을 일깨워 공감을 얻고 있다. 츠지 히토나리는 ‘냉정과 열정사이’의 저자로 국내에 많은 독자를 가진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는 현재 일본과 프랑스를 오가며 배우, 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 소설은 두 작가가 동일한 줄거리를 여자와 남자 주인공의 관점에서 풀어가는 내용이다.

여주인공 최홍은 어학연수를 위해 도쿄로 간다. 한국에서는 출판사를 경영하는 아버지 덕분에 부족함이 없이 지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능숙하지 못한 일본어와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외로움을 느낀다.

벚꽃이 만개한 4월 어느 날 도쿄의 한 공원에서 달리기를 하던 최홍은 소설가 지망생인 준고를 만난다. 20대 초반의 대학생인 두 사람은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다. 첫눈에 사랑의 감정이 피어오르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랑에 젖어든다. 낮선 유학 생활로 외로워하던 최홍은 사랑을 찾아 준고의 집으로 들어간다.

준고의 부모님은 성격차이로 이혼했다. 경제 능력이 없는 아버지로 인해 준고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다. 그는 생활비와 학비를 아르바이트로 충당해야 하는 처지이다.

시간에 쫓기는 준고는 홍이와 사랑을 나눌 시간이 부족하다. 바쁜 준고로 인해 홍이는 많은 시간을 홀로 지낸다. 그녀는 외로움을 달리기로 푼다. 한편 그녀의 어머니는 일본인과 사귀는 것을 반대한다. 그리고 귀국을 압박하기 위해 송금을 중단한다. 그 때문에 준고는 생활비 마련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아르바이트로 보내야 했다.

최홍의 아버지는 출판사 사장으로 일본에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두 사람은 가정 상황과 시대적 사정으로 사랑을 완성하지 못했다. 일본의 여인은 미혼으로 살고 있다. 아버지의 소개로 최홍은 준고와 그녀의 집에 찾아간다. 그녀는 최홍과 준고를 친 자식처럼 대해 준다.

최홍과 준고의 갈등은 그녀의 가정 형편이 어려워짐에 따라 깊어갔다. 서로 대화를 할 기회가 없어 사소한 일에도 오해가 생겼다. 그러던 중 준고가 회사사정으로 홍이와 약속을 어기게 된다. 준고가 자신의 잘못을 변명으로 일관하고, 진심어린 사과를 하지 않은 것에 최홍은 분노한다. 그 사건을 계기로 둘은 갈라선다. 그녀는 짐을 싸 귀국해 버린다.

최홍은 아버지를 도와 어려워진 출판사를 일으키느라 바쁜 시간을 보낸다. 준고는 자신이 꿈꾸었던 소설가가 된다. 그 사이에 7년이 흘렀다. 준고는 최홍과의 사랑이야기를 주제로 소설을 썼다. 그의 소설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인기를 끈다.

한국 출판사의 초청으로 팬 사인회를 위해 내한한 준고는 출판사 편집실장으로 일하는 최홍을 우연히 만난다. 두 사람에게 사랑은 남아 있으나 오해의 골을 좁히지 못한다.

준고는 오해를 풀지 못하고 출국 날을 맞는다. 준고는 최홍이 달리기를 하는 분당의 공원으로 간다. 그곳에서 준고는 최홍과 함께 달리기를 하며 지난 7년간 사랑을 잊지 않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둘 사이의 오해는 풀리고 사랑의 불씨는 다시 살아난다.

이 책은 위의 동일한 스토리를 남자와 여자의 입장에서 풀어나가고 있다.

공지영은 최홍을 주인공으로 여성의 입장에서 섬세한 감정 표현과 아름다운 어휘로 묘사한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 소설이 아니라 실제 상황을 묘사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줄거리 보다는 미묘한 감성 표현으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그동안 공지영의 책은 현실적인 측면을 냉정하게 묘사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소 억지스러운 상황 전개와 예견된 결론으로 인해 많은 독자에게 실망을 주었다.

책의 기획 의도에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해도 여운이 남지 않는 결론은 독자에게 식상함을 준다. 많은 리뷰에서 이 소설을 순정만화 수준이라고 폄하하고 있는 이유도 그것이다. 두 작가의 인기와 화려한 어휘구사에도 불구하고 결론이 정해진 스토리로 인해 소설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츠지 히토나리는 남자의 입장에서 준고를 주인공으로 글을 전개한다. 츠지 히토나리는 특유의 빠른 사건 전개를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를 쉼 없이 넘나드는 상황묘사로 독자의 시선을 끈다. 그러나 억지로 끼워 넣은 듯한 한일관계 묘사는 소설의 주제와 어울리지 않았다.

두 소설가가 모두 삽입한 윤동주의 시는 소설의 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과거 한일 관계를 암시하기 위해 넣은 것이지만 시가 갖고 있는 품격에 비해 소설의 주제가 너무 가볍다.

기획된 소설의 한계점이 있는 것은 인정하더라도 사건의 전개가 너무 우연의 연속이다. 두 사람의 소설을 모두 읽었음에도 7년간의 공백에 대한 공허함이 남는다. 지면의 한계가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뭔가 빠뜨린 부분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책을 덮으면서 몇가지 아쉬움이 든다. 군더더기 같은 한일관계 설명과 최홍의 아버지 사랑이야기는 빼는 것이 옳다. 오히려 주제에 충실하도록 사랑의 아픔을 심도 있게 그리는 것이 필요하다. 두 한일 남녀의 사랑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양국의 간극은 좁아질 것이다. 한일 우호를 위해 억지로 소설을 이용한다는 인식을 준 것은 티이다.

기왕에 한일 문제가 대한 내용이 나온 김에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얼마 전 시네마현에서 독도를 자국 영토로 하는 조례제정 1주년 기념식이 있었다. 그리고 고이즈미총리는 주변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매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많은 우익인사들은 끊임없이 망언을 일삼는다. 역사왜곡에서 동해 표기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억지는 끝이 없다.

이런 상황에선 한일관계의 개선은 불가능하다. 표면적으로 도출되지 않도록 얼버무릴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개선은 불가능하다. 결자해지가 안 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일본이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고 사죄해야 한다. 다시는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신뢰를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결코 마음으로 가까워질 수 없다.

정치지도자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이 결정한다. 망언이 반복되는 것은 일본 국민이 우리나라를 보는 인식과 관련이 있다. 문화 교류 부족과 왜곡된 역사의식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다양한 문화 교류는 양국의 간격을 좁히는 계기가 된다.

독후감을 쓰기 위해 몇 차례 책을 들추어 보았다. 동일한 줄거리를 전혀 다른 문체로 풀어 나간 두 사람의 재능이 부러웠다. 앞으로도 다양한 글을 통해 양국 국민의 공감대를 쌓는 가교 역할을 기대한다. 그로인해 많은 걸림돌이 산적한 한일 관계 개선에 밑거름이 됐으면 한다.

소설의 주제인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 소설에서 준고와 최홍은 얼마든지 연락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7년의 세월을 보낸다. 사랑의 아픔을 겪어 본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소설가가 된 준고는 두 사람의 사랑을 주제로 소설을 썼고 그 내용이 최홍에게 전해지기를 기대한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만나 사랑을 완성한다.

청춘을 지나온 사람들 중에 한두 번 사랑의 열병을 앓지 않은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삶은 살아본 사람이 알고 사랑은 표현해야 알 수 있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아니 이루어질 수 없다. 눈으로 마음으로만 통할 수 있는 사랑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에 대한 수많은 정의가 있다. 그 중에서도 남녀간의 사랑은 쉽게 타오르고 쉽게 꺼지는 속성이 있다. 소설에서는 영원한 사랑에 대해 묻고 있다. 사랑은 짧고 현실은 길다. 특히 남녀간의 사랑은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 서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변덕스러운 기후에 놓인 화초를 대하듯 해야 한다.

이 소설을 덮으면서 과거 스치듯 지나갔던 연인들이 생각난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멀어지고 아픈 이별을 경험했다. 혹자는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은 어떤 언어나 글로도 표현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한다. 그 많은 이별은 모두 서로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을 지속할 의지와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사랑은 연애 과정뿐 만아니라 결혼생활 중에 더 정성을 들여 가꾸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잡은 고기에 미끼를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행복은 쟁취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느끼는 것이다. 자기 자신 ․ 자연 ․ 가족 ․ 친구 ․ 회사동료 ․ 기타 살아가면서 대하는 모든 것에 행복이 있다. 평소 대하는 모든 것에 정성을 들여야 한다.

소설에서처럼 7년간이나 사랑을 가슴에 묻고 사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끊임없이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 사랑을 통해 행복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 사랑은 깨지기 쉽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주워 온 물건처럼 대하는 자세는 스스로 행복을 포기하는 것이다. 우연이나 기적을 바라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할 것을 젊은 연인들에게 주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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