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세번째 생일을 기념하여 금강산을 다녀왔습니다. 20년을 넘게 회사 생활을 했지만 가정을 가진 남자의 입장에서 평일 혼자 여행을 가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그럼에도 금강산 여행을 꼭 가고 싶었습니다.
밤 12시 집결지에 도착하여 사전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 교육 내용을 암기하여 버스에서 일행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러나 내내 마음은 북쪽에 가 있었습니다. 많은 생각으로 잠들지 못했습니다. 충혈 된 눈으로 도착한 화진포에서 북한 땅에 도착할 때까지 3시간이 걸렸습니다. 긴 월경 수속도 새로운 경험으로 흥미로웠습니다.
드디어 도착한 북한 땅은 시간이 멈추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이전으로 돌아가 버린 듯한 모습에서 옛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길가에 부동자세로 서 있는 군인들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뒤로 자기 할일을 하는 북한 사람들의 모습이 간간히 보였습니다. 어린 시절 산처럼 민둥산이 끝없이 펼쳐져 있더군요.
작은 키에 무표정한 북한 군인들은 위협적이기 보다는 안쓰러웠습니다. 제가 보기엔 형식적인 월경절차가 싱겁기도 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도중 북한 주민들 중 몇 분이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얼굴에 손님을 진심으로 맞이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어떤 조건도 없이 처음 보는 사람들에 대한 반가움을 표시하는 옛사람들의 표정 그 자체였습니다.
금강산을 오르면서 맑은 물과 수려한 절벽 능선의 파노라마를 만끽했습니다. 물이 저처럼 맑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초등학교 시절까지 등하교 때 개울물을 그냥 마셨는데 지금은 상상조차 못합니다. 너무 맑은 공기 때문에 몸이 가벼워짐을 느낍니다. 다른 민둥산에 비해 고목들이 빼곡한 숲을 보았습니다. 이토록 잘 가꾸어진 것은 금강산을 대하는 북한인들의 남다른 애정 때문일 것입니다.
산을 오르면서 내내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들 때문에 북한 사람들은 평생의 소원이라는 금강산을 지척에 두고도 구경을 못하겠구나.' 빨리 남북관계가 더 좋아져서 남북한 사람들이 함께 산을 오르내렸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오기 어렵다는 생각에 무리해서 상팔담까지 구경하고 나니 식사시간이 늦어졌습니다. 식당에서 북한 안내원과의 대화는 남다른 즐거움이었습니다. 마지막 떠나는 관광객을 잡는 노점원의 재치 있는 상술에 주저 없이 지갑을 열었습니다. 달러만 받는다는 사전지식과 달리 원화도 자연스럽게 받는 모습에서 가까워진 남북의 거리를 느낍니다.
돌아오면서 석양을 맞으며 집으로 향하는 북한 농부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부부가 다정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간간히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때문에 다니는 길도 통제를 받고 가고 싶은 금강산도 못가지만 손님을 대하는 듯한 표정에서 순수를 봅니다. 그들의 맑은 눈과 표정에서 마음의 풍요를 느낍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념과 체제가 남북을 갈라놓았지만 여전히 남북한 사람들은 한 민족입니다. 금강산보다 더 소중한 것을 보고 왔습니다. 저들은 우리보다 더 행복할지도 모릅니다. 다만 금전적인 이유로 행복을 누리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금강산은 북한에서 별천지이자 섬입니다. 그러나 그 섬으로 향하는 길가에 우리의 과거가 존재합니다. 그들에게 물질만능이 아닌 행복한 풍요를 선사해 줄 지혜가 필요합니다. 행색은 초라하지만 행복한 보통사람들의 모습을 본 것이 이번 여행의 최대 수확입니다. 그들은 행복이란 가진 양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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