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록이 후에 개인차량을 이용 부부 또는 지인 몇명이 산행을 하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합니다.
1. 산행일시 : 2015년 3월 11일 7시 10분 - 17시(9시간 50분, 점심 휴식 1시간 20분 포함)
2. 산행코스 : 여원재-고남산-유치재-매요마을-유치삼거리-사치재-새맥이재-아막성-복성이뒷재-복성이재
3. 도상거리 : 21.9km
4. 교통 : 자가 차량이용(여원재 민박집 주차 후 무룡고개에서 택시로 이동 회수)
5. 동반 : 유리공주
6. 세부 일정
- 여원재 출발 : 7시 10분
- 고남산 5km지점 : 7시 27분
- 철탑 아래 : 7시 53분
- 누운 소나무 지점 : 8시 34분
- 고남산 도착 : 9시 9분(12분 사진 촬영 등)
- 고남산 출발 : 9시 21분
- 동안재 도로 : 9시 33분
- 저수지 갈림길 : 10시 10분
- 매요마을 : 10시 55분
- 유치삼거리 : 11시 23분
- 618봉 도착 : 11시 55분(식사 45분)
- 618봉 출발 : 12시 40분
- 사치재 : 1시 8분(사진 5분)
- 아막성 : 4시 13분
- 복성이재 : 4시 41분(사진 5분)
- 철쭉식당 도착 : 5시
7. 연락처 및 만난 사람(2일차 산행 포함)
- 여원재 민박 : 010-9271-1858, 063-626-1307
- 복성이재 민박 : 011-9668-7992, 063-626-1307
- 무릉고개에서 여원재까지 택시 : 011-652-6100(번암면 택시)
- 1일차 산행 : 산림감시원 아저씨
- 2일차 산행 : 산림감시원 아저씨
8. 소요비용(2일차 산행 포함) : 총 297,000원
- 서울에서 여원재 왕복 주유비 : 80,000원
- 서울에서 여원재 왕복 통행료 : 29,000원
- 왕복 휴게소 식사비 및 커피 : 24,000원
- 여원재 민박집 아침 포함 : 45,000원
- 복성이재 저녁, 아침 포함 : 69,000원
- 무릉고개에서 여원재 택시비 : 40,000원
- 기타 산행 준비물 비용 : 10,000원
2014년 유리공주와 함께 한 100대 명산(산림청 선정 100산 +인기명산 100산 총 129개) 투어를 완료하고 잠시 휴식기를 가졌다. 원래 백두대간을 이어서 하기로 했는데, 엄두가 나지 않고 회사일 등으로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다 보니 차일피일 지금까지 미루어졌다.
봄도 오고해서 심기일전 큰맘 먹고 산행계획을 세웠다. 큰 아들이 선물로 사준 스마트폰이 있어 매우 편리하다. 트랭글을 깔고 지도를 다운 받아 안내를 받아가며 산행을 하니 길을 잃을 염려도 없고, 시간 관리도 자연스럽게된다. ^.^ 카메라도 따로 들고 다닐 필요없고. 여러모로 정말 편리한 세상이다.
3월 10일 퇴근하고 유리공주를 만나 여원재로 출발해 여원재 민박집에 도착하니 눈이 오고 있다. 역시 봄이지만 고산지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사방이 어두운 가운데 홀로 우리를 기다리시던 할머니가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원래 별채의 방을 써야 하는데, 집안에 아무도 없고 해서 그냥 애들이 쓰던 방을 쓰라고 하신다. 10시가 넘었기에 대충 씻고 잠을 청했다.
남의 집에서 자다보니 잠이 오지 않는데 고양이가 밖에서 시끄럽게 울어댄다.ㅠㅠ 겨우 잘들어 일어나 콧등만 간신히 씻고 할머니가 차려주신 푸짐한 아침상을 받았다. 무국인데 소고기를 듬북 넣고 표고버섯으로 국물을 내서 맛이 기가 막힌다. 게다가 맛있는 잡곡밥까지...... 배불리 먹었다. 점심에 라면 먹을 때 필요하다고 말씀드리자 밥과 맛있는 김치를 넉넉하게 넣어 주셨다. ^.^
산행 과정은 사진 중간 중간에...
인터넷의 많은 분들이 지도를 올려 주셔서 복사해 갔는데, 막상 트랭글이 있다보니 한번도 꺼내 볼 필요가 없었다.^.^ 트랭글용 오프라인 지도를 미리 만들어 담아가면 매우 편리하다. 이번에 갈때는 용량이 낮은 것을 가져 갔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유용했다.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 정밀 지도를 다운 받아 가면 더욱 유용할 듯. 앞으로는 산에서 길을 잃고 알바를 할 일이 없을 듯하다.
여러가지 지도가 다양하게 인터넷에 올려져 있다. 지도 말고도 http://www.everytrail.co.kr/에 가면 먼저 산행 한 사람들의 다양하고 상세한 트랙 정보가 올려져있다. 나도 출발하기 전 많은 분들의 트랙을 보고 사전 준비를 했다. 맨 아래 이번에 간 코스의 트랙을 올려 놓았으니 참조하기 바란다.
트랭글에 나타난 산행 정보들. 고도정보와 시간정보를 보면 쉰 곳과 힘든 코스를 쉽게 파악할 수 있어 매우 유용하다.
실제 트랙을 캡췌한 사진이다. 미리 입력한 오프라인 지도 덕분에 알바 한번 하지 않고 쉽게 다녀왔다.
실제 산행한 고도와 속도 그래프. 고도를 보면 험한 코스를 파악할 수 있고, 속도가 낮은 곳은 쉰 곳이므로 쉽게 어디에서 어떻게 산행했는지 파악이 가능하다.
이번 구간은 여원재에서 복성이재까지 입니다.
권한철님이 작성하신 고도표와 다소 차이가 있으므로 감안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산행하면서 웨이포인트를 입력해 두었는데 아무래도 첫 사용이라 어설픈 점이 있었다.
여원재 민박집의 벽면 풍경이다. 마치 어머님 집에 들른 기분이었다. 밤새 눈이 내리다 보니 손녀가 키우던 고양이가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려고 울어대던 것을 제외하고는 매우 따듯하고 아늑한 민박집니다. 물론 많은 사람이 오면 별채에서 자야한다.^.^ 그래도 뭐 독립되어 있으므로 나름 더 좋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민박집 남편이나 아들의 취미인 듯.
민박집 어른들의 종교를 짐작하게 하는 사진들이 벽에 몇개 걸려 있다. 십우도를 보며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아직 아상에 매달려 방황하는 ㅠㅠ
민박집 아침밥상. 매우 마음에 드는 잡곡밥, 그리고 엄청 많은 소고기와 할머니가 재배한다는 표고버섯을 듬북넣어 맛을 낸 무국이 정말 맛있다. 산행하면서 먹으라고 준 김치도 정말 특이하면서도 맛있다. 김장김치에 속을 아무것도 넣지 않았는데 특이한 맛이다.
행복한 가정임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인상적이다. 아참 할머니가 올레tv리모컨을 잘못 만져 tv 모드가 되었는데 한참을 씨름했지만 결국 해결을 못하고 떠났다.ㅠㅠ 도대체 왜 그렇게 복잡하게 만든 것인지, 아니면 내가 무지한 것인지.ㅠㅠ
눈 덮힌 민박집의 풍경. 세워진 차가 내 차고, 우측에 있는 것이 새로 지은 별채다. 우리는 본체에서 가족처럼 묵었다.
여원재 휴게소 전경. 외부인들이 차를 주차하고 산행을 많이 하는 듯 용무자외 주차금지 표지판이 있었다. 다음 지리산 구간을 갈 때 여기에 세워 놓고 가려고 했는데.ㅠㅠ
성삼재에서 내려오는 하산길이다. 다음에 내려올 길이라 상세히 봐 두었다.
복성이재로 이어지는 능선길이다. 안내도와 산불조심 펼침막, 그리고 우측에 눈에 덮힌 여원재 설명문이 설치되어 있다. 당연히 이정표도 있고...^.^
여원재를 설명하는 안내문이다. 맨 아래 이번 산행과 관련한 설명 자료를 모아서 게시했으므로 참조하기 바란다.
유치삼거리까지 10.5km란다. 저기까지 가서 점심을 먹을 예정인데 마음이 바쁘다. 우측 상부에 해가 떠오르는 것이 살짝 보인다.
고남산 남쪽 길은 이렇게 많은 소나무 길로 이어져 있다.
눈덮힌 장교리마을과 멀리 고남산이 보인다.
고남산을 알리는 이정표인데 이 방향으로 가면 장교리 마을을 들러서 가게 된다. 오프라인 지도를 보니 먼저간 사람들은 이 이정표 뒤로 직접 간 모양이다.
장교리 마을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곳에 위치한 이정표. 대부분이 오래되어서 그런지 누워있거나 기울어져 있다. 전반적인 정비가 필요해 보인다.
좌측이 장교리 마을쪽이고, 전면이 여원재쪽 능선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장교리 마을길을 따라 올라 온 듯 싶다.
능선에 잘 가꾸어진 산소가 눈에 덮여 있다. 이곳은 명당인지 능선에 매우 많은 산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대부분이 매우 잘 가꾸어져 있어 사람들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평판한 소나무 숲길이 이어지고 있다.
마을을 벗어날 무렵 뒤돌아 보고 찍은 눈덮힌 소나무 군락지.
철탑이 산 아래를 가로지르고 있고 멀리 이미 해가 떠올라 있다. 아래가 장교리, 좌측이 권포리마을이다.
3월인데 눈에 덮힌 소나무들이 멋진 모습으로 서있다. 참 많은 소나무들이 있어 우리 산야임을 증명하는 듯하다. 이제 온난화로 인해 소나무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데, 고산지대라 그런지 아직은 잘 자라고 있어 대견스럽다.
소나무들의 호위를 받으며 잘 정비된 묘지가 인상적이다. 후손들의 정성이 느껴지는 묘지 풍경이다.
정상 아래에는 단 한군데 밧줄지대가 있다. 매우 완만하고 흙산이라 돌길이 거의 없는데 정상 바로 아래에 바위길과 계단이 조금 있다.
정상 아래에 있는 계단의 모습이다.
여산재에서 올라온 능선의 모습이다. 대간을 따라 걷는 이들에게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는 것은 큰 만족과 성취감을 준다.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볼 마음의 여유도 덤으로 제공한다.
고남산 제단지 설명문이다. 맨 아래 관련 자료를 참조하길 바란다.
고남산 정상에 있는 산불감시 초소의 모습니다. 내려가는 길에 유일하게 이날 만난 산불감시원 할아버지가 가져다 놓은 것으로 보인다. 매우 친절하고 산에 대해 잘 아시는 듯 했다. 참고로 육십령까지 등산로 복원 공사를 하고 있는데 올해 말이면 완료된다고 한다.
운봉읍과 멀리 지리산 줄기가 보인다. 날씨가 매우 화창하고 오전에는 바람 한점 없어서 산행하기 매우 좋았다. 기온이 낮아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해가 뜨고 바람이 없으니 추운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노고단 , 성삼재로 이어져 여원재로 흐르는 백두대간이 한눈에 보인다.
고남산 정상에 있는 송신탑의 모습이다.
고남산 정상석은 정상에서 10미터쯤 아래 너른 곳에 설치해 놓았다. 사각형의 정상석이 듬직해 보인다.
정상석 뒷면에는 이렇게 백두대간을 암각해 놓아서 이곳이 백두대간의 한 점임을 증명한다.
고남산 정상에서 유일하게 유리공주와 인증사진을 찍어 보았다. 스마트폰을 가져갔는데 거치대나 셀카봉을 가져가지 않아 인증사진은 거의 남기지 않았다. 안 보는 것이 더 나은 인물이라 뭐 없는게 보는 이들에게는 편할 것이다.^.^
통신 송신탑까지 올라오는 동안재 도로의 모습이다. 등산로는 이 길을 따라 내려가다 좌측으로 갈 수도 있고, 사진 뒷쪽의 급경사 산길을 따라 내려 갈 수도 있다. 물론 중간에 이 길을 잠시 만나지만.
kt 통신중계소의 모습이다.
동안재에서 고남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곳에 위치한 백두대간 안내도
도로에서 산길로 안내하는 꼬리표들, 백두대간에는 매우 많은 꼬리표들이 있어서 많은 도움을 준다. 이들 꼬리표를 보면서 우리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게 된 이유를 알 것 같다. 타인을 위한 배려와 협동심이 모이고 모여 오늘의 우리를 만든 것이다. 작은 꼬리표지만 뒷 사람에게는 큰 위안과 안내와 힘을 주는 사랑의 징표다.
매요마을의 상부에 있는 저수지 갈림길이다. 우측에 저수지가 살짝 보인다.
573봉을 오르기 전에 보이는 저수지의 풍경이다.
여전히 빽빽한 소나무 숲길이 이어지고 있다.
매요마을 입구에 누워있는 표지판. 사치재가 3.2km인데, 산꾼들이 마을 개들로 인해 주민들 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뒷산을 우회한 듯 하다. 우리도 먼저간 분들의 길을 따라 우회를 했는데 낮이라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은 것 같다.^.^
매요마을 뒷산에서 본 마을 전경이다. 차라리 마을을 관통했으면 다양한 마을 풍경을 담을 수 있었을 것 같다.ㅋ
매요마을을 빠져나와 사치삼거리로 이어지는 길이다.
사치 삼거리의 이정표의 모습, 이길을 따라 내려가 우측으로 오라가면 사치재가 나온다.
표지판에 복원공사로 도로를 따라 우회하라고 써 놓았지만, 산꾼의 자존심상 그냥 무시하고 올라갔다. 아직 추워서 그런지 공사는 시작하지 않았고, 산행에는 아무 걸림돌도 없다.
산 중간에 사초를 한 산소가 보이는데 떼를 입힌 모습이 매우 특이하다. 저렇게 해 놓는 경우는 처음 본 듯 하다. 어떻든 이곳 후손들의 정성이 대단하다.
가산마을의 정수장 같기도 하고, 하여간 관공서의 시설물로 보이는 곳이다.
아래에서 본 사초 모습과는 다른 사초를 한 산소가 있다. 워낙 가물어서 잔디가 살지 걱정이다.
공사중인 관계로 자리를 옮긴 사치재 이정표가 누워있다.
88고속도를 새로 확장 공사 중인데, 사치재를 연결해서 환경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터널위를 메우고 있는 장면이다. 예전 같으면 그냥 길을 내고 말았을터인데 환경을 위해 큰 공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대견스럽게 느껴진다.
사치재 88고속도로 터널 구간이다.
복성이재 방향 시리봉쪽에서 본 사치재와 618봉의 모습
최근에 화재가 났었는지 시리봉 능선은 잡목만 가득하다. 덕분에(?) 조망은 좋다.
능선에 자리한 산소인데, 사초가 필요해 보인다. 산소자리가 매우 넓어서 관리하기 힘들텐데 그래도 잘 관리하고 있는 듯하다.
아막성 직전에 작은 돌탑이 있다. 흙산이라 거의 돌도 없는데 산성을 쌓은 돌들로 만든 듯하다.
아막성 안내문의 모습이다. 자세한 설명은 아래에 옮긴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아마성에서 복성이재로 향하는 하산길. 성의 흔적이 눈에 덮여 있다.
복성이재와 아막성 갈림길 표지판인데 조금전에 지나온 작은 산소가 흥부묘인 듯하다. 표지가 없어서 사진을 찍지 않았는데.ㅠㅠ
흥부마을로 이어지는 작은 고개의 모습이다. 우측으로 내려가면 흥부마을이다.
백두대간 등산로의 이정표인데 전반적인 정비가 필요해 보인다.
흥부골 갈림길에서 복성이재로 넘어가는 마지막 오르막길이다. 몇미터 남지 않았는데, 많은 꼬리표들이 힘을 보탠다.
복성이재에 설치된 흥부마을 안내판의 모습니다.
복성이재 전경. 좌측으로 내려가면 한옥팬션이 있고, 전면으로 가면 번암면이다.
복성이재 이정표인데 내일 가야할 중치까지 12.3lm란다. 앞쪽이 오늘 묵을 철쭉식당 방향이다.
복성이재에 설치된 철쭉식당 광고판이다.거리는 정확하게 1km이고 하산은 10분, 올라오는데는 15분이 걸렸다.
복성이재 안내문이다. 자세한 것은 아래에 첨부한 글을 참조하기를 바란다.
철쭉식당 앞 도로에 설치된 봉화산 등산로 종합 안내도. 철쭉이 매우 유명해서 많은 관광객이 온다고 한다.
철쭉식당 전경. 박원순시장이 묵어 갔다고 해서 호감이 있었는데, 건물은 매우 허름하다.
철쭉식당에서 저녁 상을 먹다말고 찍어 보았다. 배불리 먹고 술도 한잔걸치고 푹 쉬었다. 조립식 가건물형태라 웃풍이 매우 심하고 화장실은 막혀서 불편했지만 쉬는데는 별 불편이 없었다.
이하는 인터넷에서 찾아 올린 중요 지점의 설명 자료들이다.
두산백과
여원치[ 女院峙 ]
요약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과 이백면 사이에 있는 고개로, 국도 24번이 지나간다.
높이 477m이다.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장교리와 이백면 양가리 사이에 있는 고개로, 남쪽으로 수정봉~고리봉~정령치~만복대와 이어지며 백두대간(白頭大幹)의 맥을 잇고 있다. 옛날에는 남원과 함양 지역을 이어주는 교통로로 이용되었다.
여원치 고갯마루는 지리산의 시루봉을 비롯한 봉우리들을 감상하기 좋은 곳이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여원낙조'라 하여 운봉팔경 중 하나로 꼽힌다. 고개 남쪽으로 국도 24번이 지나가는데 도로변에 고려 말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원치 마애불상(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62호)이 있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극심하였을 때 이성계의 꿈에 어느 노파가 나타나 적과 싸울 날짜와 전략을 알려주었는데 그로 인해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한다. 이성계는 꿈속의 노파가 고갯마루에서 주막을 운영하다가 왜구의 괴롭힘으로 자결한 주모였다고 믿고 노파를 위로하기 위하여 사당을 짓고 '여원(女院)'이라 불렀는데 그때부터 이 고개 이름이 여원치(여원재)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주민들은 '연재'라고도 부른다.
두산백과
고남산[ 古南山 ]
요약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과 산동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위치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산동면
높이 : 846.8m
높이 846.8m이다. 가재~수정봉~고남산~여원치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산으로,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면 북서쪽에 산동면과 경계를 이루며 솟아 있다. 정상에 서면 운봉분지와 산동면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고려 말에 태조 이성계가 왜구를 격퇴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이곳에 도착하여 제단을 쌓고 나서 산신제를 올리고 대승을 거두었다고 하여 '태조봉' 또는 '제왕봉'이라고 불린다.
산은 돔(dome) 형태로, 중생대의 대보화강암인 조립질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사가 급하고 곳곳에 바위 덩어리들이 솟아 있지만, 정상부에는 풍화층(바위가 풍화 작용에 의하여 부스러져 이루어진 지층)이 형성되어 약간 평탄한 편이다. 산 정상부에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남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는 동쪽으로는 운봉천과 남천(람천)이 되어 경호강을 통해 낙동강으로 빠져나가고, 북서쪽으로는 요천(蓼川)을 이루며 섬진강에 합류한다.
두산백과
봉화산[ 烽火山 ]
요약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위치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장수군 번암면,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높이 : 920m
명물 : 철쭉군락
문화재 : 아막성(전라북도기념물 제38호)
높이 920m이다.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 그리고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의 경계에 솟아 있다. 봉화산은 철쭉으로 유명한 산으로, 5월 중순이 되면 산 능선과 바위 언덕 곳곳에 군락을 이룬 철쭉들이 만개한다. 정상에 오르면 멀리 북쪽으로 장안산(1,237m)과 남덕유산(1,507m)·기백산(1,331m)이, 남쪽으로 지리산의 봉우리들이 연이어 펼쳐진다.
남원시 아영면 성리 흥부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복성이재(545m)~치재~꼬부랑재(665m)~다리재(850m)를 거쳐 정상에 오를 수 있고, 장수군 번암면 노단리 신기마을에서 올라가면 다리재를 거쳐 정상에 닿게 된다. 복성이재 근처에 삼국시대의 산성인 아막성(阿莫城, 전라북도기념물 제38호)이 있다. 아막성에서부터 복성이재를 거쳐 꼬부랑재에 이를 때까지 곳곳에 철쭉군락지가 있고, 장수 쪽에서 다리재로 오르는 길에도 철쭉군락지가 펼쳐진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아막성[ 阿莫城 ]
전북 남원시 아영면 성리에 있는 산성. 전라북도기념물 제38호. 운봉고원과 황산의 산줄기로 구획되어 있는 아막고원은 백제의 아막산, 신라의 모산성 등으로 불린 곳으로, 삼국시대에 신라국경의 요새로서 신라와 백제를 잇는 팔량치를 지켰다.
유형 : 유적
성격 : 산성
소재지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문화재 지정번호 : 전라북도 기념물 제38호
문화재 지정일 : 1977년 12월 31일
정의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성리에 있는 산성.
내용 :
전라북도 기념물 제38호. 경상남도 함양군과 접경을 이루는 아영고원의 서곽능선 봉화산에서 남으로 뻗은 660고지에 북면하고 있다.
운봉고원과 황산의 산줄기로 구획되어 있는 아막고원은 백제의 아막산, 신라의 모산성 등으로 불린 곳으로, 삼국시대에 신라국경의 요새로서 신라와 백제를 잇는 팔량치(八良峙)를 지켰다.
602년(진평왕 24)에 백제가 아막성을 침공하자 귀산(貴山)과 추항(箒項)을 보내어 백제군을 물리쳤으나 두 사람은 전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아막(阿莫, 阿谷)의 뜻은 주성(主城)·주곡(主谷)의 의미로, 이 지역이 섬진강의 계곡분지를 나타내는 지형상의 특색과 중요한 방어진지라는 데에서 나왔다.
성지는 비고(比高) 약 220m, 북변은 성벽이 완전히 남아 있으며 거의 직선으로 길이가 15.07m, 동변도 거의 직선으로 길이가 147.1m, 서변은 길이 126.9m, 남변은 곡선을 이루는데 길이가 208.1m이며, 주위는 632.8m에 이른다.
남변 성벽의 능선 연결 부분에는 공호(空濠 : 물이 마른 못)를 설치하였다. 성내에는 삼국시대의 와편과 백제계의 도자기편 등이 퇴적되어 있는데, 북문지 수구(水口) 동편에는 지름 1.5m의 타원형의 석축 우물터가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남원지(南原誌)』
『전북문화재대관』(전라북도, 1979)
대한민국 구석구석
흥부마을(흥부 발복지)
분류 : 인문(문화/예술/역사) > 역사관광지 > 민속마을
위치 : 전북 남원시 아영면 성리
○ 개요
남원시 아영면 성리마을은 판소리 다섯 마당 중의 하나인 흥부전의 배경이다. 이곳은 전해내려오는 설화와 지명을 근거로, 흥부가 정착하여 부자가 된 발복지(發福地)로 밝혀졌다. 이 마을에는 오래 전부터 복덕가(福德家) 춘보설화(春甫說話)가 전해져 오고 있다. 흥부가와 춘보설화는 가난 끝에 부자가 된 인생역정, 선덕의 베품을 내용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 내용이 유사하다. 실제로 성리마을에는 박춘보(朴春甫)의 묘로 추정되는 무덤이 있다. 매년 정월 보름에 망제단에서 흥부를 기리는 춘보망제를 지내오고 있다.
성리에는 흥부전에 등장하는 지명이 마을 곳곳에 남아있다. 허기재, 고둔터, 새금모퉁이, 흰묵배미 등의 지명은 고전에도 등장했던 지명이다. 지금은 길 양쪽으로 감자농사가 한창인 '허기재'는 허기에 지쳐 쓰러진 흥부를 마을 사람들이 도운 고개라고 전해진다. '고둔터'는 고승이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흥부에게 잡아 준 명당으로, 흥부는 이곳에서 제비를 고쳐준 발복집터이다. 실제 '고둔'이라는 지명은 곳집(창고)이 모이는 터, 즉 부자가 되는 터라는 뜻이다. 이곳은 장수군 번암면으로 넘어가는 짓재 고개마루에 높다랗게 자리잡고 있으며 마을의 산자락과 이웃 논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사금모퉁이'는 사금꾼들이 금을 채취하던 곳으로, 흥부가 이곳에서 금을 주워 부자가 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한편, '흰죽배미'란 장소는 흥부가 부농이 된 후 은인들에게 보답으로 주었다는 논으로 전해진다. 흥부아내가 이웃들이 흰죽을 먹고 살아나서 ‘흰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노디막거리'는 흥부가 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부가 화초장을 지고 건넜다는 개울로 추정된다. 지금은 콘크리트로 덮여있지만 개울가에는 억새가 무성히 자라고 있다. 이곳저곳을 거닐면서 형제 간의 우애, 부(富)와 빈(貧), 성공한 이후에도 어려웠을 시절 함께 했던 이웃을 잊지 않은 겸손과 나눔의 정신을 되돌아 봄직하다.
○ 관련 홈페이지 : 남원 문화관광 http://tour.namwon.go.kr
○ 정보제공자 : 아영면사무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백운산[ 白雲山 ]
전북 장수군 반암면과 경남 함양군 백전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 1,279m.
내용
높이 1,279m. 북쪽의 민주지산(珉周之山, 1,242m)·덕유산(德裕山, 1,614m)·남덕유산(1,507m)과 남쪽의 지리산 등과 함께 백두대간의 일부가 된다.
이 산은 북으로 육십령(六十嶺, 734m)을 사이하여 남덕유산과, 남으로 팔량치(八良峙, 513m)를 격하여 지리산과 분리되나 서쪽의 장안산(長安山, 1,237m)과는 연속된다. 암석은 선캄브리아기의 소백산편마암복합체(小白山片麻巖複合體)에 속하는 호상편마암(縞狀片麻巖)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쪽 사면은 함양군 백전면으로 남강(南江)의 지류인 위천(渭川)의 집수역(集水域)이 되고, 백운리에서 함양읍까지의 위천 양안(兩岸)에는 하안단구가 발달해 있다. 백운산에서 육십령까지 백두대간의 주능선이 남북방향으로 연속되고 있어서 북쪽은 동쪽 사면과 서쪽 사면으로 나누어진다.
동쪽 사면은 함양군 서상면으로 남강의 지류인 남계천(濫溪川)의 집수역이나, 서쪽 사면은 장수군 반암면으로 섬진강의 지류인 요천(蓼川)의 집수역이 되어 소백산맥이 섬진강과 낙동강의 분수계가 된다. 남계천의 양안에는 안의까지 하안단구가 발달해 있다.
안의에서 송계까지의 남계천은 맑은 물과 기암괴석이 어울려 아름다운 계곡을 이루는데 일명 화림동(花林洞)이라고 한다. 이 계곡에는 유서 깊은 정자들이 있는데, 임진왜란 때 의병운동을 일으킨 박명부(朴明榑)가 머물렀던 농월정(弄月亭)과 전시서(全時敍)가 머물렀던 거연정(居然亭) 등이 그것이다.
아름다운 계곡과 정자들이 있어 특히 여름에 좋은 관광지가 된다. 서쪽의 장수군에 위치한 장안산과 함께 연속 등반을 하면 좋은 등반로가 된다.
등산 진입로는 함양에서 백전면 백운리까지 버스로 와서 큰골이나 미끼골 등 남쪽 사면으로 오르는 코스와, 안의에서 송계까지 버스로 와서 원통치에서 대방령(大方嶺, 880m)·하치(下峙, 1,157m)의 능선을 타는 코스가 있다. 백전면 백운리의 신촌이나 운산리의 중재는 고랭지채소와 밤이 유명하며, 큰골 입구에는 백운암(白雲庵)이 있다.
참고문헌
『산(山)』(조선일보사, 1983.12)
『한국지명요람(韓國地名要覽)』(건설부 국립지리원, 1982)
[네이버 지식백과] 백운산 [白雲山]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한민국 여행사전
무룡고개와 지지계곡
위치 :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여행 포인트 : 무룡고개 정상에서 영취산 정상까지는 천천히 걸어서 왕복 한 시간쯤 걸린다. 여유가 있다면 다녀오는 것도 좋다.
임진왜란 중에 진주성이 함락되자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던진 조선 여인 논개,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은 논개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이다. 원래 생가가 있던 곳은 마을 앞으로 흐르는 계곡을 막은 저수지로 인하여 수몰되었고, 이후 지금 자리에 생가를 복원하고 논개동상, 비각, 기념관 등을 만들었다. 애틋한 마음으로 논개생가를 천천히 한 바퀴 돌아 나오면 이내 고개가 시작된다.
무룡고개에 오르면 보이는 것은 호쾌하게 흘러가는 백두대간의 산줄기와 제자리를 찾아가는 금남호남정맥의 능선뿐이다. 두개의 산줄기가 만났으니 그 사이에는 당연히 계곡이 있다. 바로 맑은 물 흐르는 40리 지지계곡의 시작이다.
지지계곡은 동화호를 만나면서 끝이 난다. 댐에 갇혀 있던 물은 다시 요천을 거쳐 섬진강으로 든다. 댐 건설로 실향민이 된 드렝이마을 사람들이 정성을 모아 세운 망향비를 지나면 댐 아래로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댐과 바투 붙은 곳은 죽림마을이고 멀리 산 아래가 번암면 소재지다. 아주 넓은 들판은 아니어도 눈 맛은 시원하다.
댐에서 내려다보는 죽림마을에는 사연이 있어 보이는 커다란 기와집이 몇 채 있다. 3·1운동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명인 백용성 조사의 생가 죽림정사다. 죽림정사에는 복원한 생가와 대웅보전, 유물전시관 등이 있다.
첨부 ;
1 백두대간 여원재-고남산-매요마을-사치재-아막성산-복성이재 20150311.gpx
2 백두대간 복성이재-봉화산-중치-백운산-영취산-무룡고개 20150312.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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