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비오는 10월의 마지막날 나는

별꽃바람 2009. 10. 31. 13:41

아침 일찍 어제 모아 둔 잣을 가방에 담고,
부엌칼 들고 텃밭으로 향했습니다.
김칫거리 수확하러.^.^

 

밭에 가 보니 들깨가 너무 여물어 새들의 잔치상을 만들었더군요.
할 수 없이 예정에 없는 들깨 수확에 돌입했습니다.


들깨를 다 베어서 묶어 쌓아 놓고 나니 바닥에 깔린 비닐이 눈에 거슬리네요.
어쩔 수 없이 멀칭한 비닐을 하나씩 걷어 냈습니다.

 

찬 이슬을 피해 있던 수 많은 지렁이, 그리고 귀여운 뱀 두마리가 놀라 달아나고
어찌 되었던 말끔하게 걷어 내고 나니 중천이어야 할 해가 안 보이네요.


비가 온다고 했지 참.^.^

 

배가 두둑하게 부른 배추 세개를 잘라 다듬고,
허벅지 굵기로 자란 무도 세개 뽑아 다듬고
파도 넉넉하게 뽑아 다듬어 담고
여기 저기 널린 호박들을 주웠습니다.


아참 옥수수도 몇개 건졌네요.^.^

 

애호박은 가져오고,
조금 덜 성숙한 늙은 호박들은 보는 사람에게 가져가라고 길가에 놓았는데
비가 오고 나면 추워진다고 해서 리어거를 끌어다 창고에 넣고
대강 주변 정리를 끝내니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하네요.

 

아직 자태를 뽑내지도 못한 단풍이 비와 함께 속절없이 떨어지고,
주말을 맞은 게으른 향락객들로 서울을 빠져나가는 차량의 물결을 마주하며 귀가.

 

아내는 친구 학원행사에 귀빈으로 행차하시고,
집안엔 휑하니 찬바람만 가득하네요.

 

읽어야 할 책도 많고,
다듬어야 할 채소랑,
잣, 결명자도 까야 하지만
홀로 있는 자유를 만끽하느라 창밖을 바라보며 끄적이고 있습니다.

 

컴퓨터에서 흘러 나오는 감미로운 음악,
어둑한 실내에의 아늑한 분위기,
창밖으로 펼쳐진 노오란 은행잎의 마지막 자태를 감상하다 보니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가 좀 고프군요.


밥 챙겨 먹고 인터넷의 바다에 퐁당 빠져야 할 듯.ㅋㅋㅋ

누구 이 비를 함께 맞으며 뜨거운 차라도 한잔 할 분 없나요?^.^


저녁엔 쓴 소주라도 혼자 마셔야 할 듯
혼자 있어도 행복한 비오는 10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세상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보원(남성인권보장위원회) 어록  (0) 2010.01.25
체와 용  (0) 2009.11.11
'뇌, 생각의 출현'을 읽고  (0) 2009.10.13
사람은 마음으로 늙는다.  (0) 2009.09.30
스트레스와 몸의 반응  (0) 2009.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