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
나의 꿈은 교주였다. 아니 지금도 그 꿈은 유효하다. 목표를 향해 좌우를 돌아보지 않고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결과 나름의 열매를 얻고 고교 졸업식을 마치고 교문을 나서는 순간 전해들은 소중한 이와의 영원한 이별은 삶의 치열한 경쟁 속에 얻어지는 열매의 달콤함이 얼마나 헛되고 부질없는 것인가를 너무나 강렬하게 일깨워 주었다. 이때 나는 기존의 종교가 설명하지 못하는(아니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신이 인간에게 던진 삶의 의미를 알아내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기 위해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 그 교주가 되고 싶었다.
신은 인간을 통해 무엇을 알게 하려는 것일까? 신이 우주 만물과 인간을 창조한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끔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보기 위해 출세와 전혀 관계없는 쓸데없는 수많은 책(?)들을 무수히도 탐독했고 신비주의에 빠져 보기도 했으며, 젊은 날 많은 방황도 겪어 보았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신의 모습이나 목소리는 없었으며, 다만 냉엄한 현실만이 삶의 무게를 더할 뿐이었다. 내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언젠가 <생물학 에세이>라는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인간 역시 생물학적으로 동물의 일종이라는 것을, 인체를 구성하는 단위 세포에서 각각의 구조까지 낱낱이 열거하며 설명했던 책, 그 책을 읽으면서 얻은 지식(보온밥통에 얼음 넣기)을 유용하게 생활에 활용하지만 인간도 동물일 뿐이라는 결론에 몹시 못마땅했었는데,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동물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는 사실, 특히 기독교 신자들의 입장에서는 불쾌한 일이지만, 물리적으로나 화학적으로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은 분명 동물의 그것과 동일한 것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비과학적 현상과 신학적인 기적들을 보면서 물질적인 측면이 아닌 정신적인 측면에서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전제하에 이 책의 내용을 들여다보자.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랜덜프 네스와 진화생물학자 조지 월리엄스는 인체에 발병하는 질병 역시 진화론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정교하게 설계되었다는 인체에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왜 포함되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해답을 찾는 과정을 통해 인간 역시 오랜 기간동안 자연선택의 법칙에 따른 진화에 의해 변화해왔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인간의 질병치료에서 다윈 의학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현대의학이 인간의 질병을 고장난 기계를 수리하듯이 기름을 치고 부속품을 가는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데서 오는 오류를 지적하고 인체의 진화 연구를 통해 질병의 근본원인을 밝히고 질병의 적절한 예방과 치료를 해야한다고 역설한다.
이 책은 첫 장에서 인체가 질병에 걸릴 수밖에 없는 진화론적인 불가피성을 설명하는 한편 각 장에서 인간이 걸리는 대부분의 질병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경우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의문을 제기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진화론은 자연 선택설을 바탕으로 한다. 다윈 의학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체가 왜 질병에 잘 걸리는 유전자를 선택하는 이유를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면서 많은 질병들은 애초의 설계(기독교적인 관점의 창조)와 현재 환경(에덴 동산이 아닌) 사이의 부조화에서 발생한다. 인체는 수백 만년 동안 초원에서 수렵채취를 하며 살면서 그러한 생활에 적응하는 유전자를 선택하였기 때문에 지방, 소금, 설탕 등의 음식물이나 자동차, 마약, 담배, 인공조명, 냉난방 등에 적응할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해 현대병에 시달리게 된다.
기본적으로 병원균과 숙주, 세균과 항생물질, 유독성과 기생체에 대한 진화 메커니즘을 설명하면서 자연환경에 만연한 독소와 이에 적응하는 인체의 대응의 하나로써 반응하는 것이 질병이다. 인간의 각종 질병이 바이러스나 외상, 여러 가지 독소와 위험 요소들로부터 인체를 지키기 위해 사전 경보체계라는 것을 화재경보기의 원리를 통해 설명하면서 현대의학의 질병에 대한 처방 중 상당수가 질병의 근본원인을 제거하기보다는 화재경보기를 제거하는 것과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화재경보기의 원리, 즉 평소 고장으로 오동작을 일으키고 정기적인 유지보수를 위한 비용이 수반됨에도 화재가 발생하면 경보를 발하여 인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에 반드시 설치되고 운영되어야 하는 존재, 바로 그것이 화재경보기이다. 따라서 중요한 건물일수록 더욱 정교하고 민감한 화재경보기를 설치하는 것처럼 인체에도 다양한 외부 독소와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여러 가지 화재 경보기 역할을 하는 시스템을 갖게 된 것이다. 통증을 비롯한 알레르기, 콧물, 편도선, 공포, 불안 등이 인체의 화재경보기에 해당한다.
논점을 조금 벗어나 보자. 현대 산업사회에서 경찰, 소방관, 각종 기기를 유지 보수하는 담당자들은 모두 화재경보기에 해당한다. 평상시 대부분의 시스템은 아무 문제없이 잘 작동하지만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들이 없다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경제논리로 일선 기술자들을 외부 인력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는 건물에서 화재경보기를 제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통증이 없는 사람은 30세 이전에 각종질병으로 사망하며 독성물질에 알레르기가 없다면 독소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해 무방비 상태에서 다량에 독소에 노출될 것이다. 인체가 세균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열, 철분압류, 통증과 전신권태, 기침과 재채기 등의 방출, 백혈구 등에 의한 공격 등 내부적인 방법과 항생제 복용 등 외부적인 방법이 있으나, 우리가 천년동안 진화할 것을 세균은 단 하루만에 진화하므로 결코 완전한 승리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이 질병에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병원체로부터 완전한 격리뿐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모든 독소로부터 완전한 격리는 불가능하다. 결국 극소량의 독소에 대해서도 방어 시스템이 작동되어야만 병원체를 멀리하게 될 것이다.
요즘 급증하는 암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암이란 자신의 역할을 다한 세포는 스스로 자폭해야만 함에도 이러한 메커니즘을 위반하는 반란자 세포로 인해 발생한다. 즉 손상 받은 세포는 건전 세포의 증식을 통해 복구된다. 이때 복구가 완료된 이후에도 일부 세포가 증식을 멈추지 않고 계속 증식을 한다면 암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암이 발생할 가능성은 손상된 세포를 복구하는 횟수와 반란자 세포를 제거하는 통제 시스템이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횟수에 비례하여 증가한다. 현대 사회에서 인체가 적응할 틈도 없이 흡연, 전자파, 인공 방사선, 약물, 공해물질 등 수많은 새로운 위험요인들이 도사리고 있고 정상 세포의 손상은 물론 통제시스템의 교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급증하며 따라서 암의 위험은 급속히 증대된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그러므로 인간만이 정신병에 걸린다. 누구나 어느 정도의 우울증과 공포, 불안 감정을 갖고 있다. 이러한 정신적인 요인이 특정한 사건이나 계기로 인해 과도하게 작동할 경우 나를 비롯하여 누구든지 정신병에 걸릴 수 있으며 이는 인간이 생각을 통해 얻는 이점의 반대 급부이며, 여가가 많고 정신노동이 많은 현대인에게는 증가할 수밖에 없으며 이 또한 화재경보기의 오동작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질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노화 역시 진화의 측면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다. 자연선택에서 종의 유지와 번식의 측면에서 모든 동물의 청춘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반대급부로 노화라는 피할 수 없는 질병을 초래한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 역시 노화라는 질병은 피할 수 없다.
이 책에서 노화의 원인을 한 마리 말이 끄는 마차로 명쾌하게 정의한다. 즉 인체의 모든 기관은 거의 모두 같은 속도로 마모되며, 노쇠는 한 종이 생태적 변화에 발 맞추어 계속 진화할 수 있게 다음 세대에게 공간을 마련해 주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죽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자. 인간이 지구상에 창조(?)된 이후(즉 고고학적으로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난 백 만년 기준) 백년에 1%의 인구 증가를 고려할 경우에도 약 (1.6E+43)*2(아담과 이브)명의 인간이 살게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물며 죽지 않는다면 상상만 해도 답답해진다.
에덴동산이 아닌 지구상에서 생존하는 인간에게 각종 질병은 피할 수 없는 불가피한 것이며, 따라서 질병을 회피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고 활력 있게 사는 것만이 진정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이다.
이 책을 덮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우리는 너무나 자기 본위로 모든 것을 생각한 것은 아닐까? 질병에 대한 인식 역시 단순히 없어야만 하는 것, 제거되어야 하는 존재로만 생각해 왔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자기 중심적인 것인지를 인식하게 된다. 질병은 불가피한 자연의 선택이며 이것이 바로 신의 선택이 아닐까?
다윈 의학의 발전을 통해 의학은 질병의 원인과 치료의 측면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염을 비롯한 수많은 질병은 계속될 것이며, 의학의 발전과 더불어 새로운 질병도 끊임없이 출현할 것이다.
인간은 결국 동물이다. 그러나 다른 동물들과 같은 존재가 아닌, 진정으로 만물의 영장이 되기 위해서는 흙으로 돌아갈 육신이나 자손번식을 위한 노력보다 사랑과 봉사로 삶을 살아간다면 영원한 삶을 사는 것이 될 것이다. 물론 죽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결국 역설 같지만 이 책은 우리가 질병을 피할 수 없는 동물이라는 점을 통해 동물과 다르게 인간답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강조하는 듯하다. 아직 깨달은 것도 없고 신의 계시(?)도 없어 교주가 되겠다는 나의 꿈은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으나 분명한 것은 나 역시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갈 육신을 껍데기 삼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껍데기를 위해 많은 아까운 시간들을 축내고 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이유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자. 많은 종교에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이 인간에게 제시한 삶의 의미를 실천하기보다는 껍데기 뿐인 육신을 치장하거나 구원받기 위해 신을 찾는다. 그러나 진정한 신이라면 신의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껍데기 속에 진주처럼 숨겨진 보석을 거두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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