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영화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중학교 때 제가 삶의 의미와 보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 주신 선생님의 영향이기도 합니다. 영화뿐만 아니라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없는 오락, 드라마 등 시간을 낭비한다는 느낌이 드는 일에는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답답하고 무미건조하다고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쓸데없이 게임이나 놀음, 2차, 3차로 이어지는 음주로 인해 시간을 빼앗기는 것을 너무 아깝게 생각합니다. 저 같은 사람만 있으면 많은 유흥업소들은 망하겠지요.
서론이 길군요. 그런 저임에도 불구하고 살아오면서 가장 존경했고, 아쉬움을 너무나 많이 남긴 노무현대통령의 삶의 전환기가 되었던 사건을 다룬 영화 ‘변호인’을 관람했습니다. 관람한 이유는 영화를 통해서나마 그분의 삶을 돌아보고 아쉬움으로 남은 허전함을 달래기 위함이었습니다.
평일 시간이 생겨 조조를 보러 갔습니다. 한산한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절반이상을 채운 영화관의 객석을 보면서 인기를 실감했습니다. 영화는 예상보다 훨씬 잘 만들어졌더군요. 특히 노무현이라는 사람에 대해 비호감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분의 진면목을 보여주는데 일조를 했다고 평가합니다.
노무현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변호했던 용공 사건이 30년이 넘게 흐른 지금에도 펼쳐지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며 괜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30년 전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수많은 선배들은 성공하는 비결로 상식과는 괴리된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뇌물, 줄타기, 편법, 사기 치기 등 성공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단호히 거부했고 승진을 포기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지금도 평직원으로 지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결코 후회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깨끗하게 살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인간인 이상, 사회에 일원으로 사는 이상 어쩔 수 없이 비리나 비도덕적인 일들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 삶을 살던 저에게 상식이 있는 세상, 사람 사는 세상을 주장하며 나선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정말 구원자 같은 존재였습니다. 머리도 나쁘고 용기도 없는 저와 같은 사람을 대신해서 싸워줄 백전백승을 할 것 같은 용장을 만난 셈이죠. 하지만 기득권의 벽은 높았고, 우리 국민의 수준은 그분을 지켜줄 만큼 높지 못했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이 당선되고 1주년이 되던 날 칼바람이 부는 여의도 광장에서 하신 말씀이 지금도 귀에 생생합니다. 그날 대통령내외 바로 뒤에 앉아 있었는데, 그 추운 날씨에 경호하기도 어려운 상황인데 오실 줄은 몰랐었습니다. 그런데 별도 경호도 없이 제가 앉은 앞자리 플라스틱의자에 앉아서 콧물 닦아가며 1시간이상을 앉아 행사를 지켜보는 모습은 충격이었습니다.
그날 하신 말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청와대에 들어가서 인사자료를 보니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 1급수는 없고, 간신히 찾으면 2급수나 3급수가 있으며, 대부분은 4,5급수더라. 이제 여러분들이 바르게 성장해서 1급수가 되어 나라를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시민혁명이고 나라를 바로 세우는 길이다.’
그 말씀은 이후 인사청문회마다 증명되고 있습니다. 제가 입사 초기에 선배들이 했던 것처럼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한 사회에 우리가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치고 1급수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변호인은 용공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사회 풍조입니다. 친일을 해도, 빨갱이를 해도, 독재를 해도, 쿠데타를 일으켜도, 사기를 치던, 뇌물을 주던, 부정선거를 하던 성공을 하면 처벌할 수 없다는 의식이 국민들 머리에 박혀 있는 한 우리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습니다. 지금과 같은 사회라면 열심히 공부하라고 가르치는 우리 아이들에게 더 영악한 사기꾼이 되라고 밀어주는 결과가 됩니다.
우리 아이들도 결국 제가 살아왔던 더러운 세상, 노무현대통령 말대로 시궁창 같은 세상에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사회가 변해야 합니다. 변호인에서
송광호는 이렇게 외칩니다.
“그러니까! 내 아들, 딸들은 이런 세상에 살게 하지 않게 하려고 이러는 겁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합니다.
“헌법 제2조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현실의 모습을 보면 국민은 없고, 권력만 있습니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사람들이 국민을 억압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전형적인 후진국의 모습이 우리나라의 현재 모습입니다. 이건 누구를 탓할 필요도 없습니다. 바로 우리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불의에 항거하기 보다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에 물들어 있는 다수의 국민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 출세만 하면 된다는 속물주의, 후진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나라가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선진국이었던 아르헨티나가 몰락하고, 6.25때 참전하고 장충체육관을 지어주었던 필리핀이 후진국으로 전락한 이유도 바로 후진적인 국민성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영원히 후진국으로 남지 않으려면 국민이 먼저 변해야 합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고 저항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권력의 주인인 국민을 깔보는 권력이 나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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