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화재와 업보
식목일 전야에 시작된 산불이 순식간에 양양과 고성을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수십 년을 가꾸어온 우리의 산림과 산골에서 순수하게 땅을 일구던 많은 사람들의 재산을 연기로 날려 버렸습니다. 그리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인 낙산사를 불태운 것입니다.
뉴스에서 연일 들려오는 소식을 접하며 안타까운 마음과 관계자들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었습니다. 저도 몇 차례 다녀온 낙산사, 이름만 들어도 아름다운 절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습니다.
살아오면서 산불을 몇 차례 경험했기에 충분히 그 위력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지만 이번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될 줄은 예상을 못했습니다.
서론이 길었군요.
어제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프로에서 낙산사 주지 스님과의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먼저 언론에는 당시 정황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하 경향신문 ;
정념 주지스님 “낙산사 전소는 人災”
낙산사 정념 주지스님은 5일 “아침에 헬기가 물을 뿌린 다음 잔불 정리를 확실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성 산 불쪽으로 옮겨갔다”며 “낙산사에는 유물이 많으니 확실히 소화를 해야 하니까 헬기를 남겨달라고 했으나 철수시켰다”고 주장했다.
정념 스님은 “산불이 나 부랴부랴 구입한 소화기 150대로 자체 진화작업을 벌였지만 낙산사를 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덧붙였다.
주지스님의 말대로라면 산불 진화 현장을 지휘한 현장 대책본부측이 상황판단을 잘못해 낙산사가 불에 탔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어제 인터뷰 내용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념스님이 답변한 내용의 요점만 간추리면 대충 이렇습니다.
“국민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하다.”
“산 생활을 20년을 넘게 했는데 이런 일에 대해 현명하지 못하게 대처한 나의 불찰이다.”
“이번 사건은 10분에 8km씩 번져가는 엄청난 자연재해로 불가항력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나의 덕이 부족하여 이런 일이 생긴 것이므로 책임을 통감한다.”
“많은 심려를 끼쳐드렸는데도 낙산사를 아끼고 사랑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화재를 진화하느라 고생하신 모든 관계자 여러분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런 말도 한 적이 없다. 이건 천재지변이고 나의 부덕의 소치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문화재(동종)를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
기타 여러 말씀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낙산사의 주지인 자신의 부덕의 소치이고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대해 죄송하다는 것이 요지였습니다. 김미화가 다른 사람들의 책임에 대해 질문을 할 때도 천재지변이고 모든 사람들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노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리고 서운한 부분은 없냐고 질문하자 자신의 부덕으로 생긴 일이고 천재지변인데 누구를 탓하겠느냐고 답하면서 오히려 진화작업을 하느라 고생한 분들을 위로 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인터뷰를 들으면서 정말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잘하는 종교인이라지만 감정적으로 전혀 흔들림 없이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반성을 하는 목소리에 진실이 들어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종교의 종류를 떠나 세상 살아가는 모든 일들이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계신 듯 했습니다. 위에 언론 보도를 먼저 읽고 인터뷰를 청취했기 때문에 위에 쓰인 내용과 유사한 발언이 있지 않나 예상을 해 보기도 했습니다.
김미화가 위에 보도된 내용을 질문하자 그것은 와전된 것이고 모든 사람들이 최선을 다했지만 천재지변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답하더군요. 그리고 산에서 20년을 넘게 살아 온 자신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였다고 말하며 누구의 탓도 아니고 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의 한계를 절감했다고만 말하더군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지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들려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말입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것 하나만으로 도마에 올려놓으려는 자세는 결코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건에서 실체적인 진실보다는 사건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책임을 씌우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번 사건이 사람에 의한 인재인지 아닌지는 조사해 보면 알겠지만 문제가 사전에 생기지 않도록 더욱 철저하게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고 사건이 생기면 보다 치밀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다 예견하고 방비를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자연이 바로 도다.”라고 노자가 말씀하셨듯이 어찌 미물에 불과한 인간이 자연의 이치를 알겠습니까? 최대한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생활하고 순응하며 사는 것이 동양철학의 근본임을 깨닫는다면 모든 일들에 대해 낮은 자세로 임하는 것이 순리이겠지요.
“모든 것은 나 자신의 부덕함에서 생긴 것이다.”
살아가면서 생기는 모든 일들은 결국 자신이 만든 업보입니다.
당연한 진리인데 가끔씩 잊고 살았습니다. 이번 낙산사 화재 사건을 계기로 정념주지 스님을 통해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겨 봅니다.
'세상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가장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 (0) | 2005.05.30 |
---|---|
[스크랩] 웃음은 방탄조끼이다 (0) | 2005.05.30 |
[스크랩] 주말농장을 돌아보고 (0) | 2005.05.30 |
[스크랩] 생각할수록 좋아지는 사람.... (0) | 2005.05.30 |
[스크랩] 부부는 이런 거래요 (0) | 2005.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