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교육파업과 국회파업은 천박한 '노예' 행태

별꽃바람 2006. 1. 11. 10:08
책임질 줄 모르는 사람 
[정경희의 곧은소리] 교육파업과 국회파업은 천박한 '노예' 행태

 

미디어오늘 media@mediatoday.co.kr

 

"경제가 어렵다"는 말은 귀에 멍이 들만큼 흔히 듣는 유행가다. 노무현 정부에 적대적인 정치꾼이나 논객과 신문들이 즐겨 쓰는 비판적 구호의 하나다. 그러나 해마다 한국은행이 내놓는 통계를 보면 사실은 정반대인 것 같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해외여행자와 유학생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가고 있다. 지난해 해외여행과 유학·연수에 퍼부은 돈은 15조원 규모인 150억 달러. 이 중 유학·연수 비용은 1년 동안에 37% 늘어 3조원 규모인 30억 달러였다 한다. 그러니까 해외여행에 쓴 돈은 120억 달러였다는 얘기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조사에 의하면 초중고생의 조기유학이 최근 6년 동안(1998~2004년) 10배 이상 폭발했다 한다. 재작년인 2004년 3월부터 이듬해 2월말까지 1년 동안 유학 길에 오른 초중고생이 1만6446명으로 6년 만에 10배 이상 늘었다. 놀랄만한 사실은 해외유학길에 오른 코흘리개 초등생이 6년 만에 자그마치 30배 늘었다는 것이다. "경제가 어렵다"기 보다는 떵떵거리는 부유층과 빈곤층이 동거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2004년 10월6일자 '천국과 지옥' 제하의 본란).

   
▲ 한국사립중고교법인협의회가 후기 일반계 사립고교와 사립 중학교의 신입생 모집 및 배정을 거부키로 방침을 세우고 있던 지난 6일 오전 이 협의회의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서울 영훈고등학교 앞에서 전교조 조합원들이 규탄 기자회견을 하려 하자 학교측 관계자들이 이를 저지하며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그나마 이른바 '교육열'도 잘못된 표현이다. 이 나라에는 다만 '학벌'에 낄 수 있는 대학졸업장과 영어와 해외유학이라는 '간판'에 대한 허영과 탐욕이 있을 뿐이다. 사실 이 나라의 보통사람들은 '간판' 없는 교육에 아예 무관심하다. 통계청이 3일 내놓은 자료에 의하면 '서적 및 인쇄물'에 대한 가구당 월평균 지출액이 1만397원이라고 했다(2005년 3분기).

간판만 찾는 학벌사회

명색이 '문자의 나라'임을 자랑해 온 우리가 책을 사기 위해 쓰는 돈은 외식비나 자녀의 사교육비는 고사하고, 이·미용비나 담뱃값의 5분의1, 또는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비록 '온라인 시대'라고는 하지만 책과 인쇄물은 오랜 역사적 축적의 결과물로 여전히 정신적 동력원이다. 책을 읽지 않는 오늘의 한국인은 이 나라의 정신적 타락과 위기를 말하고 있다. 책과 담을 쌓고 사는 사람들, 교육보다 간판과 허영을 추구하는 얼빠진 한국인-그것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다. 그래서 이 나라에는 학교도 많고, 대학생 수는 인구에 비해 세계 1위를 자랑하지만 교육붕괴 위기에 직면해왔다.

사학법 개정은 이처럼 위기에 직면한 한국 교육을 바로잡기 위한 개혁입법의 하나로 논의된 끝에 국회를 통과한 것이었다(작년 12월9일). 그러나 사학법개정 반대 장외투쟁에 나선 한나라당은 국회에 복귀하지 않은 채 파업을 계속하고 있다. 다만 제주도의 5개 사립고의 뒤를 이어 사립중고교법인협의회도 신입생배정 거부를 철회함으로써 사립중고의 '교육파업' 이라는 최악의 사태는 피할 수 있게 됐다(8일).

제주도의 5개 사립고가 교육파업을 철회한 것은 아마도 임시이사파견, 새 교장 임명등 교육부의 강경대응 태세와 5개 사립고 구성원들의 교육파업에 대한 거부감이 맞아 떨어져 나타난 결과가 아닐까 짐작된다.

"노예는 위대한 것을 모른다"

사립학교도 진정한 의미의 교육기관이라면, 그리고 오너와 족벌이 지배하는 '학교장사'가 아니라면 운영투명성 확보를 위한 사학법 개정에 반대할 까닭이 없다. 그런 뜻에서 평생 땀을 흘릴 각오로 교육현장에 뛰어든 사립학교 구성원들은 자긍심을 걸고 교육파업을 거부할 것을 기대하고 싶다. 따지고 보자면 이 나라가 직면한 교육의 위기는 학교라는 제도적 울타리 안에서만 일어난 위기는 아니다.

알맹이 없는 학벌의 '간판'만 따겠다고 아우성치는 세태, 그 중에서도 부동산 투기에 나서는 투기꾼처럼 영어와 해외유학에 운명을 거는 정신나간 사대주의 등 누적된 고질병이 그 밑바닥에 깔려있다. 또 그 밑바닥의 밑바닥에는 IMF 사태 이후 굳어진 '부익부 빈익빈' 구조가 깔려 있다. 철학자 니체는 말하기를 "노예는 중대한 일에 책임을 질 줄 모르고, 위대한 것을 추구할 줄 모르고, 현재의 것 이상으로 존중해야 할 과거나 미래가 있다는 것을 모른다"고 했다.

교육의 사명과 의미를 저버리고 교육파업에 나서고, 국회의 사명을 저버리고 국회파업에 나서는 게 얼마나 천박하고 몰지각한 '노예'의 행태인가. 또 무엇이 옳고 그른가 판단할 줄 모르고, 당파적 이해관계의 잣대로 보도·논평하는 언론이 얼마나 무책임한 노예의 행태인가. 부도덕한 '학교장사'를 끝내기 위해 시작된 사학법 개정 파동을 다같이 반성하고 뉘우쳐야 할 것이다.

정경희 /  언론인

   

정경희 선생은 한국일보 기자, 외신부장, 문화부장, 부국장, 논설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1992년 '위암언론상', 2002년 '송건호 언론상'을 수상했다. 1996년 8월부터 미디어오늘에 '곧은소리' 집필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고대사회문화연구'(1990), '정경희의 곧은소리'(1999), '실록 막말시대-권언 카르텔의 해부'(2005) 등이 있다.

 

입력 : 2006년 01월 10일 16:23:11 / 수정 : 2006년 01월 10일 18: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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