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관련

고혈압

별꽃바람 2010. 7. 17. 14:36
이 글은 김태국한의사가 93년부터 부산일보에 "한방의 허실"이란 제목으로 3년째 매주 연재하였던 것입니다.

 

고혈압(1)

 

혈압 환자를 대하면서 항상 생각나는 것은 각자 맥이 매우 다르다는 사실이다. 맥에 따라 치료법이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당연히 혈압을 조절하거나 치료하는 약이 사람마다 달라져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한의사의 고민이자 보람이다.

맥으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사람들은 흔히 맥을 보지도 않고 맥이 없다는 말을 한다. 그만큼 맥이란 말이 보편화되어 있다. 즉 맥이란 우리 기운과 같은 말로 쓰인다. 맥이 없다는 말은 정말 동맥이나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맥이 힘없이 뛴다, 우리가 기력이 몹시 지쳐 있다는 뜻이다. 이 기운을 원기라든지 생명력이라 불러도 좋다.

생명은 여러 개가 아니라 하나이므로 맥에서 총괄해서 보는데 먼저 상중하에서 기능이 어떤지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손목의 동맥이 잘 나타나는 곳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살짝 눌렀을 때와, 조금 더 눌렀을 때와 깊이 눌렀을 때를 비교했을 때 처음에는 심장과 폐, 그 다음에는 췌장과 위, 제일 누른 곳에서는 간과 콩팥과 자궁 등의 기능이 개괄적으로 나타난다. 물론 이것을 알려면 각 부위에 나타나는 정상적인 맥 모양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고혈압 경우를 보면 손가락을 살짝 갖다 대었을 때부터 맥이 불뚝불뚝하는 소위 위쪽이 항진된 사람(上實下虛)이 있는가 하면, 처음 눌러서는 맥이 나타나지 않고 중간쯤 눌러 들어가야 비로소 맥이 불뚝거리다가 더 누르면 없어져 버리는 사람(下厥上冒)도 있고, 중간까지 별로 느껴지지 않다가 상당히 눌러야 비로소 맥이 불뚝거리는 사람(下實上虛)도 있다.

이러한 맥의 차이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어떤 병이든 인체의 상중하에 불균형이 생긴다. 우리 몸은 장기끼리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므로 가령 심장병에 심장에 부담이 가는 이유를 생각하면 그것이 폐일 수도 있고 위장일 수도 있고 간이나 콩팥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혈압의 경우에도 이 맥의 불균형을 바로잡아 주는 것은 우선 혈압을 진정시키는 효과 정도가 아니라 나아가서 혈압이 다시 올라갈 필요가 없도록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맥이 정상이면서 혈압이 높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맥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몸 전체의 균형을 바로잡는다는 의미에서, 맥이 어떤 모양인지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혈압강하제를 투여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치료 개념이 되는 것이다.

 

오랜 옛날부터 맥을 짚어 진단과 치료를 해 오던 한의사들이 혈압이란 것을 알고 있었을까? 물론이다. 이천 년 전 한의서에 심장은 피를 온 몸에 돌려 체온을 유지시킨다고 하였다(心主血 環周不休 火遊行於其間). 요즘도 한의사들 중에는 혈압계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혈압계가 혈압 한 가지를 본다면 진맥을 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수십 가지쯤 되기 때문이다.

혈압은 심장이 피를 짜낼 때와 다시 빨아들일 때 얼마나 힘이 드나를 측정하는 것이다. 고혈압이란 심장이 피를 돌리는 것이 힘들어 애가 쓰인다는 말이다. 그 원인은 심장 자체가 약해서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고, 심장은 잘 주는데 조직이 받아주지 않아 심장이 부담스러워지는 경우도 있다. 그 조직이란 것도 폐일 수도 있고 췌장이나 위장일 수도 있고 간이나 신장이나 자궁일 수도 있고 팔다리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전체 상황을 진맥은 그 자리에서 간단히 알아차릴 수 있고 이러한 맥의 불균형을 바로잡아 주는 것이 혈압뿐 아니라 몸 전체 건강을 되돌려 놓는 근본 방법이라고 지난 주에 말했다.

이제 그 원인을 또 파 들어가 보자. 흔히 「심장 상한다」는 말을 많이 하듯 심장을 약하게 만드는 데는 우리 감정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심장은 혈액순환 뿐 아니라 모든 감정의 변화를 직접 느끼고 자제하기 때문에 몸에서 임금님의 역할과 같다고 한 것이다(心者 君主之官). 좋은 일엔 마음이 설레고 나쁜 일엔 가슴이 답답하며, 불안할 땐 가슴이 두근거리고 억울할 땐 가슴이 터질 것 같으며, 슬플 땐 가슴이 메어지고 찢어질듯 아프다가 두려울 땐 가슴이 섬뜩해지는 것이 모두 이것이다.

그러므로 성격상 다혈질로서 흥분을 잘하고 나서기를 좋아하며 고집을 잘 꺾지 않는 사람은 심장 활동을 지나치게 시켜 혈압이 오르기 쉬운 반면 소심하고 소극적이거나 겁이 많고 잘 놀라는 사람, 여러 원인으로 체력이 떨어진 사람은 심장 활동도 약해져 저혈압이 되기 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체력이 떨어진 사람 중에도 고혈압이 있다. 몸은 며칠이고 드러누워도 시원찮을 사람이 마음은 오만 가지 복잡한 생각 속에서 애를 쓰고 있다면 역시 혈압이 올라간다. 이 때는 폐맥(기운 보는 맥)과 심장맥은 약해져 있는데 이상하게 아래쪽 간맥은 불뚝거리는 걸로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다혈질은 기운을 내려 주는 치료를 하고, 허약자는 원기를 도우며 허약하면서도 혈압이 있는 사람은 원기를 도우면서 신경 울증을 풀어 주는 치료를 하여 맥의 균형을 바로잡으면 된다.

'건강 관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장이 왜 나빠지나?  (0) 2010.07.17
한의학과 민간요법의 차이  (0) 2010.07.17
체력으로 바이러스를 이긴다  (0) 2010.07.17
담석증은 왜 생기나  (0) 2010.07.17
한의학이 치료의학인가?  (0) 2010.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