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김태국한의사가 93년부터 부산일보에 "한방의 허실"이란 제목으로 3년째 매주 연재하였던 것입니다.
한약 달이는 법
한약 달이는 데 무슨 특별한 기술이 있어야 되는 걸로 생각하여 미리부터 겁을 내는 사람이 더러 있는 것 같아 이 글을 쓴다. 한약 달이는 것 어렵지 않다. 라면 끓이는 것과 비슷하다. 국 끓이듯이 물 붓고 좀 끓여서 국물만 마시면 된다. 한약 달일 줄 모르면 우리나라 사람 아니다.
첫째, 달이는 그릇은 무엇이든 상관없다. 꼭 약탕관에 달여야 되는 것도 아니다. 예전에 쇠에 달이지 마라고 한 것은 쇠에 반응하는 약이 있기 때문이고 요즘은 다 잡철(합금)이지 무쇠그릇은 쓰지 않으니 상관없다. 알미늄 냄비든 스텐 냄비든 코팅된 냄비든 순두부 찌게 뚝배기든 유리 주전자든 음식 만드는 그릇은 전부 한약을 달여도 된다. 바닥만 좀 좁으면 그만이다. 바닥이 넓으면 약이 물 위로 나와 덜 달여지기 때문이다. 그 중에 알미늄 그릇이 좀 약한 편이어서 보통 약은 괜찮으나 녹각을 많이 넣고 여러 시간 달이면 그릇이 좀 삭는다.
둘째, 연탄불이나 숯불에 달여야지 가스불에 달이면 안되는 줄로 아는 사람이 있는데 사실은 가스불만큼 약 달이기 좋은 것도 없다. 물 붓고 약이 끓을 때까지는 센 불에 달여도 상관없고 일단 약이 끓기 시작하면 불을 약하게 줄여 약이 살금살금 끓도록 해서 달이면 된다. 그러므로 불 조절하기 어려운 연탄불보다 요즘 많이 쓰는 가스불이 훨씬 낫다.
셋째, 달이는 시간 또한 오래 걸리지 않는다. 대개 한약재가 잘 우러나도록 미리 잘게 썰어놓기 때문에 급할 때는 이삼십분만 달여도 대충 우러난다. 권하기로는 한시간에서 두시간이다. 오래 고을수록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신데 뿌리 종류는 오래 달이면 조금 더 우러나는 것도 사실이지만 처방에 향기가 많은 약재들이 있기 마련이고 이런 약재는 오래 달일수록 냄새가 달아나서 약 효력이 줄어든다.
넷째, 재탕은 안 해도 된다. 이미 초탕에 우러날 만큼 우러났기 때문에 아무 연고도 없고 아픈 데도 없이 그저 단순한 보약으로 시름시름 먹는다면 재탕해도 좋겠지만 병 치료를 위해서는 재탕은 생략하고 초탕만 복용한다. 수정과 만들 때 계피를 한시간쯤 달여 첫물을 받아내고 다시 물 붓고 달이면 색은 첫물처럼 거무스름하니 꼭 잘 우러난 것 같으나 맛을 보면 단 맛과 향은 하나도 없고 떫은 맛 뿐이다. 그래도 정 아깝다고 생각되는 분은 약 달이기 전에 미리 물을 붓고 좀 불려 놓았다가 달이면 더 잘 우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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