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김태국한의사가 93년부터 부산일보에 "한방의 허실"이란 제목으로 3년째 매주 연재하였던 것입니다.
한약을 많이 먹으면 안되는가?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의외로 한약을 장기 복용하는 데 대해, 특히 어린이들에게 한약을 수십첩씩 먹이는 데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왜 그러는지 물어보면 대답 또한 막연하다. 주위에서 그러던데 어릴 적에 한약을 많이 먹으면 나중에 둔해지든지 살찌든지 하니, 하여간 많이 먹이면 안된다고 그러더라는 게 이유의 전부다.
한의사의 한 사람으로 이런 어처구니 없는 대답을 들을 때 자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얼마나 한의학 홍보가 덜되어 있으면 이럴까? 서양의학이 들어온 지 백년만에 일반인이 서양의학에 대해서는 왠만큼 다 안다. 그런데 동의보감이 만들어진 지 벌써 4백년이고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우리의 건강과 질병을 맡아오던 한의학의 기본 상식은 아직 이 지경이니 이건 우리 한의사들이 홍보에 등한했다는 점에서 책임이 많다고 생각한다.
물론 오해의 소지도 있기는 하다. 별 탈 없는 아이를 부모 욕심에 데려와서 보약을 몇첩 먹이면 좋지 않겠느냐는 부모 요구에 몇첩씩 지어주던 것이 관행이 되어 으례 아이들은 몇첩만 먹이는가보다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말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첫째, 치료란 언제나 치료기간이 있게 마련이다. 기관지가 허약해서 감기를 달고 사는 아이가 소아과도 다닐 만큼 다녔어도 아직 저항력이 약해 여차하면 부모를 걱정시킨다면 이런 아이를 한약 몇첩에 고쳐내라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위나 장이 약해 식욕도 없거니와 걸핏하면 체하고 멀미도 잘하고 대변도 고르지 못한 핼쓱한 아이를 역시 한약 몇첩으로 고쳐내라면 어느 한의사가 고쳐줄 수 있겠는가? 기본으로 몇달쯤 치료기간을 줘야지 않겠는가?
들째, 한약은 양약보다 장기 치료하기가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결핵 걸린 아이를 생각해보자. 결핵약이 여러 부작용이 있는 독한 약이라는 걸 알지만 오직 아이를 고칠 욕심에 6개월에서 1년씩 먹이는 강심장의 부모들이, 한약이 순하다는 걸 잘 알면서 부작용은커녕 병도 낫고 체력도 향상되는 한약을 몇달씩 먹이기를 주저할 이유가 있겠는가?
한약은 보약이 곧 치료약이다. 기관지가 약해 감기를 자주 하면 기관지가 튼튼해질 때까지 수십첩이든 먹는 게 치료다. 소화기가 약해도 마찬가지며 다른 병도 마찬가지다. 녹용만이 보약이 아니라 한약 자체가 대개 보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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