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관(陰陽觀)
불교의 병인론(病因論)에 의하면 첫째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 원소의 부조화, 둘째 귀신(鬼神)의 병, 셋째 업병(業病) 등을 꼽아 왔다. 땅(地)과 물(水)은 음(陰), 불(火)과 바람(風)은 양(陽)으로 크게 구분되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조화론은 한의학의 음양(陰陽) 오행(五行)의 조화론과 다르지 않다.
몸의 근육과 뼈의 중간에 해당되는 살(肉)은 땅(地)이고 인체의 3/4을 차지하는 물은 찬 기운(水)의 상징이기도 하다. 오로지 무른 살로 이루어진 '물살(地水)'체질은 당연히 음적(陰的)인 체질로서 나른하고 게으르며 부종이나 몸이 무거운 비대증이 걱정된다. 한의학적 태음인(太陰人)에 속하는 편이다.
물론 다이어트와 더불어 양적(陽的)으로 활발히 움직여야 한다. 말하자면 풍(風)과 화(火)의 양적(陽的)인 바람 기운과 불의 기운이 부족한 체질로서 양적인 음식이나 약을 복용해야 한다. 운동도 땀 나는 소모적인 운동이 긴요하다. 물론 땀낸 후의 찬물 마시기는 금물이다.
밤에는 음적인 기운이 왕성하므로 저축력이 강하다. 더욱 더 야간의 마시기와 먹기를 쉬어야 한다(야간불음불식; 夜間不飮不食). 땀을 낸 후 갈증을 극복하여 냉수를 벌컥 들이키지 말아야 한다. 한번 더 땀을 내기 위해 뜨거운 물에 찬물을 갑자기 부어 따끈하게 마시는 음양탕(陰陽湯)을 마신다면 금상첨화이다. 몸의 물을 빼더라도 이뇨제를 과용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한데 이뇨제의 과용은 곧 신장(腎臟) 기능의 무력화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바람과 불의 에너지가 많은 양적인 체질은 위의 문제를 거꾸로 미루어서 짐작할 수 있다. 이같이 자신을 점검하는 지혜를 음양관(陰陽觀)이라 한다.
감성적으로 고양된 '드라마 허준'이 국민의 전폭적 지지 신화(神話)를 남기고 종영되고 나서 한의학에 거는 국민적 기대는 아주 맹목적으로 위험한 수위라 아니할 수 없다.
방영 직후의 '시중 매실 품귀현상', '매실 음료 대량 출시'는 무엇을 말하는가? 아직 우리 사회에 '무조건 좋거나 나쁘다'는 절대주의 신드롬적 사고가 뿌리깊다는 증거 아닌가? '약도 되고 독도 된다'는 기초적인 상대주의적 사고 부재(不在)는 자못 그 피해가 심각하다.
필자는 '김홍경이 말하는 동양의학' 제목으로 EBS 기획시리즈 강의를 제안 받아 국민적 기대치를 음양관의 동양적 '지성'으로 승화시키겠다는 발원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강좌는 영적인 선동주의를 표방한다. 그리고 차라리 의식에 혁명의 불을 지를지언정 암기와 기억에 물들어 중용의 음양관 없는 세태를 두둔할 생각은 전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의 악(惡)한 점을 보고 미워하는 사람의 선(善)한 점을 보라(애이지기악 증이지기선; 愛而知其惡 憎而知其善)'는 예기(禮記)의 중용 음양관적 대인관(對人觀)도 강조하며 더불어 필자의 좌우명으로 삼고자 한다.
음식음양
동해바다를 옆으로 끼고 삼척 쪽으로 올라 가다보면 왼쪽으로 덕구온천이 있습니다. 온천에는 항상 전설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냥꾼 피해 도망친 사슴이 화살의 상처를 씻었다는 둥 온천수는 만병 통치약인 양 선전됩니다.
그러나 동의보감에는 기(氣)가 허한 노인은 온천 목욕 삼가라 분명 경고되어 있습니다. 산세 험한 응봉산에서 분출되어 흘러 내려오는 이 온천물 또한 경우에 따라 약(藥)도 되나 독(毒)되기도 합니다.
이상적인 목욕법이라면 아무래도 아래는 더웁게 위는 차게하여 두한족열(頭寒足熱)의 순환법을 실시하는 반욕법이 제일입니다. 특히 야외온천에서 시원한 공기에 상체를 들어 내놓으면서 하체는 뜨겁게 하는 풍욕(風浴)을 겸한 반욕법은 상상만 해도 병이 나을 것 같지 않습니까.
삼림욕이라면 일종의 식물 에너지 활용법인데 자연 속에서 땀 흘리는 운동과 겸하는 풍욕은 최고의 건강법입니다. 진흙목욕 우유목욕 등등 생각해 볼 수 있는 목욕법은 꽤나 다양하지만 음양관 없이 선택하는 목욕법은 독(毒)이 될 수도 있습니다.
덕구온천 입구에는 필자가 좋아하는 설악산 진부령 어귀의 순두부 백반집과 너무도 같은 맛의 구수한 식당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맛있는 콩비지나 두부도 연두부가 아닌 이상 지나치게 먹으면 기(氣)가 옹색(壅塞)해진다 하였습니다. 그러니 변비 있거나 저축력 많고 순환 잘 안되는 음적인 체질은 두부조차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요.
심지어 회복 음식으로 단연 으뜸인 쌀미음조차도 회복기의 대부분 환자에게는 좋지만 눈에 열 있을 때 잘못 먹으면 눈다래끼 일명 맥립종(麥粒腫)을 유발한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무심코 선택하는 식품 반찬에 음양이 숨어 있습니다. 경상도를 지날 때면 다른 지방에서는 잘 먹지 않는다는 콩잎 무침이 있습니다. 묘하게 젓갈과 산초가루 버무려 재어놓는 콩잎은 서리 내리기 바로 직전의 이파리가 제일이랍니다.
밥맛을 한결 더해주며 쌀의 끈적한 열 성분을 거친 시원함으로 중화시키는 콩잎은 기막힌 음식 예술품입니다. 섬유질이 많고 질긴 콩잎을 씹노라면 여러 과일들 중 유독 섬유질 많은 배가 소고기 육회에 꼭 들어가는 이유도 음양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푸슬푸슬한 보리밥에 콩잎을 얹어 먹는다는 상상만으로 음양(陰陽)이 안맞을 것 같은 직감 정도는 저의 독자로서 이미 가지고 계시겠지요? 심한 변비환자에게는 약이 되겠지만요.
태백으로 가는 국도 38번 도로로 들어서니 여기저기 '손칼국수' '토종닭' '민박' 등의 간판이 붙어 있는 조촐한 가옥들이 나타납니다. 칼국수만 해도 한 여름날 뚱뚱하고 열 있는 사람들이 먹으면 오후가 늘어지기 십상입니다. 차라리 시원한 보리밥이나 모밀국수를 먹었더라면 두뇌활동도 더욱 영민 해졌을 텐데. 반면 끈끈하고 열 많은 칼국수가 약되는 체질도 있으니 바로 마르고 냉한 소음인에 가까운 사람들이지요. 칼국수조차 독(毒)도 되고 약(藥)도 되는 이치조차 사색해봅시다.
계곡을 굽이굽이 휘몰아 달리다 문득 보이는 한가로운 정자 정경에 토종닭에 소주 한잔과 찹쌀 죽이 절로 그리워집니다. 그러나 필시 날개 달린 짐승은 평소 잘 떨리는 중풍체질에게 독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민간에 닭 날개는 풍기(風氣)가 많아서 여자들이 먹으면 바람 핀다는 농담성의 의학지식이 있기도 합니다. 어쨌든 알로 태어나는 난생(卵生)인 새들은 대체로 동적(動的)입니다. 동적인 새의 가장 양(陽)적인 날개가 남성들의 음위증(陰 症) 임포턴스에 활용되는 데에도 음양관(陰陽觀) 철학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마르고 열 있는 사람이 피부병 생겼을 때 닭 날개를 먹게 되면 그 피부병은 날로 더하게 됩니다.
산수(山水) 좋은 곳에는 사슴 농장이 여기저기 있게 마련이군요. 이제 태백으로 가는 육백산 중턱에도 사슴 농장이 있습니다. 전세계 녹용과 녹각의 소비가 가장 많은 한국의 현장에도 무조건적인 맹신이 숨어 있습니다.
먼저 그 성품을 보라.
녹용과 녹각과 같은 각각의 약재를 따지기 전에 한의학은 먼저 그 동물의 전체적 성품부터 진단합니다. 털이 짧고 피가 더워 한 겨울 눈 속도 제멋대로 다닐 수 있는 양기(陽氣)의 상징 사슴을 떠올려 볼까요?
깜짝깜짝 잘 놀라는 성품의 사슴을 경기(驚氣) 잘하는 어린아이에게 먹인다면 어리석은 부모입니다.
몸이 차서 밥맛이 없고 양기가 없을 때 녹용을 약간 먹는다면 좋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감기 뒤끝 남은 열이 있을 때라면 녹용 한 첩이라도 독(毒)이 될 수 있습니다. 녹각(鹿角)은 사슴의 뿔이 이미 각질화 되어 땅에 거의 떨어질 상태의 것인데 푹 삶아서 묵처럼 된 녹각교(鹿角膠)를 씁니다.
묵을 연상하신다면 당연히 몸 안에 기름기나 수분이 없는 마른체질의 진액을 보충시키는데 사용함을 알 수 있듯이 녹각교도 음적인 성품이어서 만약에 비대한 체질인데도 잔뜩 고아 먹는다면 독에 불과합니다.
엔진오일 지나치게 많이 넣은 자동차가 속력 내지 못하듯 녹각 달인 보약 먹고 몸이 더 무겁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부분 태음인(太陰人) 즉 저축력 많은 음적인 체질입니다.
마침 산을 넘어서는데 오른쪽으로 탄광이 보이는군요. 항상 건조한 석탄가루 흡입해야 하는 광부들이 잘 걸리는 진폐증(塵肺症)은 끈적한 녹각으로 아주 잘 치료되겠지요. 그러나 돈 없는 광부들은 대신 돼지 비계로도 건조한 석탄 먼지를 중화시킬 수 있습니다. 백묵 가루 많이 마시는 선생님들도 몸이 마른 편이라면 마른 해소 기침을 조심해야 하는데 역시 진폐증의 광부님들과 비슷한 증상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직업은 곧 질병의 원인 제공자이기도 하지요.
장시간의 운전은 마치 이코노미 클라스 좁은 3등석에 오래 앉은 승객처럼 피가 잘 안통하지요. 원나라 식경(食經)에는 오래 앉아 있으면 혈(血)을 상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나마 운전하는 사람은 손발을 움직일 수나 있으니 다행입니다만 꽁꽁 묶인 3등석에서 8시간 이상 앉아 있다가 혈액순환 장애로 죽은 사람이 일본의 나리따 공항에서만도 연간 30명이나 된답니다.
세계적으로는 160명 정도가 순전히 비행기 좌석에서 앉아 있는 자세만 유지하다 죽었다 하니 음양(陰陽)의 조화란 동(動)과 정(靜), 추위와 더위 등등을 조화시키는 지혜랍니다.
태백시를 통과하면서 국내 최초 허락 받은 일반 도박장에서 재산을 탕진하고 그 쇼크로 몸져누울 사람들을 걱정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있는 사람들이 폐광촌을 찾아와서 돈 좀 쓰고 가는데는 그나마 순환이 된다 하겠지만 그나마 가난 속에서도 안빈낙도(安貧樂道)하던 착한 주민들마저 일확천금의 망상에 휩쓸릴까 걱정됩니다.
분수에 없는 욕망은 엄지발가락으로 흐르는 간(肝) 경락(經絡)에 헛된 바람 즉 허풍(虛風)이 들어 몸과 재산과 가족을 다 망치게 마련입니다. '간땡이가 부었군' '간에 바람들었나' '간이 콩알만해졌다'라는 표현은 간의 크기가 증대 또는 작아졌다거나 간염, 간경화를 가리키는 단순한 물리적 의미가 아닙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간땡이가 부었다'할 때 주제넘은 허세로 큰 일 저지를 때 꼬집는 말임을 압니다. 결국 간이란 자신감과 우월감의 상징으로 우리나라 언어 속에 살아있는 유심적인 경락언어입니다.
양방의학에서의 간은 해독 작용하는 오른편 갈비 끝 해부학적 장기를 뜻하지만 동양의학에서는 간을 장군지관(將軍之官) 즉 장군의 기관이라고도 하는데 유심적 기능까지 포함한 개념입니다.
간의 기운이 잘 발달되면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호방하고, 자신감이 넘칩니다. 이러한 간 경락이 지나치게 실(實)해지면 거만하거나 허세꾼이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간 경락이 허(虛)해지면 매사 자신감이 없는 겁쟁이가 됩니다.
벼룩 간(肝)만한 가난한 친구 돈까지 긁어모아 뒷돈을 대라 하면서 이번 프로젝트는 틀림없다고 호언장담하는 사업가의 마음은 허욕이 낳은 허풍성이 아닌지 심각하게 의심해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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