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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氣)와 의학

별꽃바람 2013. 2. 21. 21:55

기(氣)와 의학

 

1. '기(氣)와 의학'의 형성

근대 자연과학의 싫증적인 정신으로 밑받침된 서양 의학은 눈부신 발달을 이룩했다 그 가운데에서도 전염성 질환에 대한 위력은 절대적인 덕이었다. 예전에는 인류를 절멸(節滅)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을 것 같았던 흑사병(페스트)등이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췄고,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하여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던 폐결핵 조차도 쉽사리 완치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원래 근대 서양 의학은 만능이 아니다. 암이나 최근에 유행하는 후천성 면역결핍증후군(AIDS)의 극복은 아직도 요원하며, 부정수소(不定愁訴:몸에 이렇다 할 탈이 없는데도 막연히 몸의 어느 부분의 고통이나 장애를 호소하는 증상)와 만성 질환에 대한 치료율도 높다고는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수술과 합성 약물에 의존하고 국소주의(國所主義)에 시종하는 방식은 약해(藥害)등의 갖가지 폐해를 일으키고 있다.

근대 서양의학이 주류를 차지한 오늘날에도 각 민족에게 고유한 전통 의학은 계속 살아 있다. 특히 이슬람의 '유나니', 인도의 '아유르베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중국 의학은 세계의 3대 전통의학으로서 이름이 높다.

일본의 경우에도 [화방(和方)]이라고 불 리는 태고 이래의 고유한 의방(醫方)을 주창하는 사람은 있었으나, 주류는 어디까지나 [한방(韓方)] 곧 중국 전통의학 이었다.

헤이안(平安) 시대에 後漢의 영제의 자손인 단파강뢰가 [의심방(醫心方)]을 저술한지 1천년이 지났다. 중국 의학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한국을 거쳐서, 또는 곧바로 일본으로 전해져 에도시대 말까지 항상 주도적 지위를 유지해 왔다.

[의심방]은 육조(六朝), 隋 ,書의 의서(醫書)를 가려서 뽑아내어 분류한 것에 불과하다. 에도시대의 고방파(古方派, 예컨대 吉益東洞)처럼 독자적인 수용 방식은 있었을지언정 일본의 의학은 중국 의학의 모방, 또는 그것을 기축으로 하여 전개되어 온것이었다.

중국의 전총의학은 ‘氣의 의학’이라고 부를 수가 있다. 氣의 개념을 제쳐놓고는 중국 의학이 성립되지 않는다. 중국 의학에서는 氣가 관념적인 면과 잘재적인 면을 아울러 가지면서 생생하게 약동해 왔던 것이다.

아래에서는 중국 전통의학의 원천이며 현존하는 의학서 가운데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체계적인 의서인 [황제내경(黃帝內徑)]의 내용을 중심으로 氣의 의학을 특색으로 하는 경락설(經絡設)과 진단,치료,양생등의 기본적인 사상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그에 앞서 ‘氣의 의학’이 성립되기까지의 과정을 잠깐 설펴 보자.

 

(1) 주술(呪術)에서 의술로

원초적인 의료가 샤면(Shaman)등의 주술사(呪術師)의 손에 맡겨져 있었던 것은 어떤 민족에게나 마찬가지였다. 주술(呪術)이란 신이나 영혼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를 통해 그 힘을 통어,조절,이용하려고 하는 행위를 말한다. 고대 중국에서 그같은 주술은 ‘무당’으로 대표되는 일종의 샤먼이 담당하고 있었다.

殷代에는 농경이 정착되고 청동기(靑銅器)가 사용되는 등 문명이 크게 개화된 시대였지만, 주술적인 분위기로 가득차 있었다.

그런 점은 갑골문의 대다수가 점복(占卜)의 문구라는 데에서도 알 수가 있다.

갑골문에는 질병에 관한 것이 매우 많다. 그것들을 실마리로 하여 엄일평은 은나라 사람의 병인관(病因觀)을 ①천제(天帝)가 내린다, ② 귀신의 동티, ③고(盬)라는 요사(妖邪)가 불러온다, ④천상(天象)의 변화의 영향등의 네 가지로 분류했다.

 

네 번째의 천후(天候)․기상(氣象)은 [風]에 관한 것이 많으며, 그 風은 풍신(風神)과 같은 신비적인 존재를 의미했다고 생각된다.

갑골문에는 아직[醫]라든가 [樂]같은 문자는 보이지 않는다.

질병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의사는 나타나지 않았ㄱ도, 무당에 의한 주술적인 의료가 주류였을 것이다. 무당은 춤[舞]을 추어서 신을 내리게 하는 자인데 대개는 여성 샤먼이다. 남성샤먼은 [박수]라고 불렸다. 이와는 달리 [祝],[宗],[卜],[史]등의 주술과 제사를 맡아서 하는 직책이 있었던 것 같다.

춘추․전국시대가 되어서도 주술적인 병인관은 뿌리깊게 남아 있어 제사나 기도․축언을 가지고 병의 원인을 제거하는 일이 행해졌다. 그것은 의(醫)의 옛글자의 하나인 [의(醫)]에 단적으로 나타나 있다. 의료를 전문으로 하는 巫는 [무의(巫醫)]라고 불렸다.

[설원(說苑)] <변물편(變物篇)>에 의하여 묘부(苗父)라는 상고 시절의 의사는 짚으로 자리를 깔고 여물로 인형을 만들어서 북쪽을 보고 축언을 발했다고 한다. 의사라고는 해도 그 모습은 무의와 다를것이 없었다.

주술적인 의료에서도 약물이 사용된 듯하나 아마도 의례적인 것이었을 것이다. [산해경(山海經)]이라는 지리서에 보이는 풍부한 약물 속에도 호부(護符:부적)와 같이 의약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이 많이 들어있다. 무당과 의사가 나누어지지 않은 시대의 약물이란 그런 것이었다. 이윽고 주장(酒漿)과 같은 것이 의약으로서 사용되게 되자 [毉]라는 문자도 [醫로 바뀌어 진다. 질병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의사가 출현한 것이다.

사상사적으로 보면 <순자(芛子)><천론편(天論篇)>에서 비를 비는 술법이 비판받고 있는 것처럼 先秦말기에는 주술적인 세계관으로부터의 이탈 현상이 나타나 있다.

주술적인 의료에 대해서도 [요즈음에는 점치는 일이나 기도를 왕성하게 하기 때문에 병이 더욱 많아졌다-<여씨춘추><진수>]고 하는 비판이 점차로 지식인들 사이에서 높아지게 된 것은 무당에서 의사로 바뀌는 과도기에서 하나의 커다란 요인을 이루었다.

 

병은 육기(六氣)의 작용이다

<좌전(左傳)>에 등장하는 의완(醫緩)과 의화(醫和), <사기(史記)>에 실린 편작(篇鵲)은 춘추․전국시대에 출현한 초기의 의사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의화가 등장하는 대단히 흥미깉은 이야기를 소개해 보자.

진나라의 평공(平公)이 병이 들어 진나라의 의화를 불러서 진단을 시키게 되었다. 의화는 평공을 진찰해 보고나서 그 병은 귀신이 준 재앙도 아니고, 음식물에 덧나것도 아니며, 오직 여색(女色)에 마음이 홀리고 어지러워져서 생긴[고(蠱)]라는 병이기 때문에 고칠 수가 없다고 대답했다.

여기에서 [蠱]란 곡물이 썩어서 공중으로 날아 올라가거나, 역자가 남자의 마음을 어지럽히거나, 바람이 불어서 산의 나무가 떨어지는 것 같은 기괴한 현상을 가리킬 때에 사용되는 말이며, 은나라 사람들이 병의 원인의 하나로 여긴 요사(妖邪)와는 다른 것이다. 진단을 마치고 의화는 병의 발생에 관해 다음과 같이 논했다.

하늘에는 여섯가지 氣가 있습니다. 그것이 오미(五味)․오색(五色)․오성(五聲)으로 바뀌는 것인데, 절도를 잃은 사람에게는 여섯가지 병을 가져다 줍니다. 육기(六氣)란 ‘음․양․풍․우․회․명(陰陽風雨晦明)’을 말하는 것인데, 음음(陰淫)은 한질(추위를 느끼는 병)을, 양음(陽淫)은 열질(몸에 열이 나는병)을, 풍음(風淫)은 말질(末:손발의 병)을 , 우음(雨淫)은 복질(배앓이 병)을, 회음(晦淫) 혹질(惑疾:마음이 어지러운 병)을, 명음(明淫)은 심질(心疾:마음에 충격을 받아 생기는 병)을 일으킵니다. 여색이라는 것을 양사(陽事)여서 회시(晦時:밤)에 하는 것인데 절도가 없으면 ‘내열혹고(內熱惑蠱)’의 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 말에서 주목할 것은 당사자의 부절제(不節制)에 대하여 하늘의 육기가 작용(感應)하여 병이 일어난다고 설명되고 있는 점이다. 이것은 나중에 이야기하는 내경의학(內徑醫學)의 병인관(病因觀)과 일치되닌 그 연원을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사실은 <좌전>의 이야긱에서는 의화가 등장하기 이전에 정(鄭)나라의 유명한 재상(宰相)자산(子産)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평공의 병을 통티가 원인이라고 고한 복술가의 견해를 깨끗이 부정하고 부절제에 기인한다고 진언했다.

이 자산이나 의화가 모두 주술적 병인관을 뛰어넘은 입장에 서 있는 것이 주목된다.

 

(2)변은 氣의 이상 때문에

앞에서 본 의화의 예에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처럼, 병인관에 氣가 들어간 것은 주술에서 의술로 전개되는 커다란 요인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氣에 입각한 독특한 생리론.병리론이 형성되어 갔다. 의서 이외의 문헌에도 이런점을 짐작하게 하는 기록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여씨춘추> <진수편>에는 氣가 막힘으로 인해 병이 발생한다고 설명되어 있다.

흐르는 물은 썩는 일이 없다. 누의 돌대에는 벌레가 먹지 않든다. 항상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신체를 움직이지 않으면 精(精氣)가 흐르지 않느다. 精이 흐르지 않으면, 氣가 막히게 된다. 기의 막힘이 머리로 가면 혹이나 풍병이 된다. 귀에 있으면 귀가 병들어 귀머거리가 된다. 논에 있으면 눈곱이 자주끼는 병을 앓고 장님이 된다. 코에 있으면 코가 막히게 된다. 배에 있으면 배가 부풀거나 치질이 된다. 발에 있으면 절름발이가 된다.

정기와 혈기는 몸 안을 항상 유동하여 생명을 유지시킨다. 그 유동이 저해되면 병이 발생한다고 한다.

같은 <여씨춘추>의 <달울편(達鬱篇)>에도 [혈맥은 그 通을 바란다......정기는 그 行을 바란다..... 병이 머물고 惡이 생기는 것은 정기가 막히기 때문이다.]라고 나온다.

다시 말해서 氣가 막히는 것은 병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모든 악의 근원이었다.

양생의 방도의 하나로 특수한 호흡법을 써서 정기를 몸 안으로 모아 들여 몸 속을 빠짐없이 돌리는 도인행기(導引行氣)의 방법이 고안된 것도 氣의 막힘이 병을 부른다는 인식에 입각했기 문이다.

몸 안의 氣의 이상과 질병의 발생을 음양론적으로 파악하면 음양의 氣의 역조(逆潮)를 병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장자>의 <대종사편>에서 자여(子輿)라는 사람이 등골이 곱어서 뒤로 튀어 나오고, 아래 턱은 배꼽에 가려져 어깨가 머리끝보다 위로 올라가는 매우 심한 곱사병을 앓고 있는 것을 “음양의 氣가 어그러진”때문이라고 한 것이 그 예이다.

또한 <장자><달생편>에서,

‘대체로 마음 속에 답답하게 맺힌 氣가 흩어져서 돌아오지 않으면 생기(生起)가 부족하게 된다. 그리고 그 氣가 올라갔다가 내려오지 않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성을 잘 내게 한다. 또한 그 氣가 올라가지도 않고 내려가지도 않아서 몸 중간의 심장부에 머물러 있으면 병이된다.’

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 견해에 입각해 있는 것이다.

 

<여씨춘추> <중기편(重紀篇)>에서,

‘큰방은 음기가 많다. 높은 곳의 대(薹)는 양기가 많으면 위(痿: 각기병)를 앓는다.

이것들은 음양부적의 병이다.‘

라고 하는 것도 환경상의 음양二氣의 치우침으로 인하여 몸 안의 음기.양기에 불균형이 일어나 병이 된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다.

 

氣에 입각한 새로운 질병관

편작이 병을 진료한 세 가지 기록(<사기>) 가운데 하나에 유명한 괵(虢:나라의 땅 이름)의 태자를 소생시킨 이야기가 있다.

편작이 마침 괵나라에 발을 들여 놓았을때에 ‘태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편작은 궁뤌 문 밑으로 가서 의술을 취미로 한다는 중서자(中庶子:관직명)에게 태자가 앓고 있는 병의 증상을 물어 보고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들었다.

태자의 병은 혈기(血氣)의 순환과 호흡이 불규칙하고 뒤얽히어 유통과 발산이 되지않으니 밖으로 폭발하여 속을 해친 것이다. 정신이 사기(邪氣)를 제지하지 못하니, 사기가 속에 쌓이고 발산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양기는 느리고 음기는 급해졌다. 그런 까닭에 갑자기 쓰러져 죽어 버리고 만 것이다.

이 중서자가 설명한 사인(死因)의 병리 해석이, 앞에서 이야기 한 두 가지 요인 곧 氣 의 막힘과 역조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편작은 태자가 아직 죽음에 이르지는 않고 있음을 꿰뚫어 보고 중서자와는 다른 병리해석을 했다.

 

태자의 병과 같은 것을 이른바 시궐(尸厥:피가 머리로 모여 얼굴이 붉어지고 정신이 아찔해지는 현상)이라고 한다. 그것은 陽氣가 음부(陰部)로 들어가서 위(胃)를 움직이고, 중경(中徑:몸 속의 經絡)과 유락(維落:피부 근육 사이의 맥락)을 얽히어 막히게 하고, 한편으로는 삼초(三焦: 六腑의 하나로서 上焦는 胃의 上口에 있어서 음식물을 위로 보내는 일을 맡고, 中焦는 胃의 中腔에 있어서 소화를 맡고, 下焦는 방광의 上口에 있어서 배설을 맡음)와 방광(膀胱)에까지 내려갔다. 그 때문에 양맥은 아래로 떨어지고, 음맥은 위에서 다투며, 회기는 닫혀서 통하지 못한다.

 

편작의 이러한 병리 해석은 氣의 통행로인 경락과 장부를 들고 나왔다는 점에서 중서자의 해석보다 수준이 높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것도 기본적으로는 음양의 氣가 역전되어 몸안의 氣의 흐름이 부조(不調)를 빚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려고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편작은 또 병을 치유시키기가 불가능한 여섯 가지 사례를 들고 유명한 앞에서의 [무당을 믿고....]외에 [음양의 氣가 병합되어 버려 장부의 氣가 가라앉지 않느다]는 경우를 들고 있다. 이처럼 몸안의 氣가 본래의 조화된 상태를 잃고 음양 二氣가 불균형하게 된 상태를 병이라고 보는 인식이 생겨나 편작과 당시의 의사들 사이로 침투해 간 것이다.

요컨대 先秦에서 한대 초기에 걸쳐서 주술에서 의술로의, 무당에서 의사로의 전개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병인관(病因觀)이 크게 변화되었기 때문이었다. 병의원인을 초자연적인 존재의 통티라고 보는 주술적인 세계관으로부터 병은 체내의 氣의 이상(막힘과 역조)이라고 보고, 또 절도를 잃은 생활을 계속하면 외계의 氣가 감응하여 병이 일어난다는 기의 개념에 바탕을 둔 병인관이 침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사정은 인격적인 천제(天帝)의 관념이 점차로 비인격적인 하늘(天:자연)로 변모를 한 사상사적인 움직임과 길을 같이 하고 있다. 氣에 바탕을 둔 새로운 질병관이 ‘내경의학’을 원점으로 하는 동양 전통의 기초를 만들게 되었다.

 

 

2. 치료는 氣의 균형 회복

현대 의학에서도 질병에 대해 정의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기의 의학’의 씨름판에 서면 간단히 단언할 수가 있다. 곧 질병이란 ‘몸 안의 기의 균형이 상실된 상태’이지 다른 것이 아닌 것이다.

<소문> <조경론편(調經論篇)>에 「혈기가 화(和)를 잃으면 백병(百病)이 변화를 일으켜서 일어난다」고 나온다. 이런 ‘혈기 불화’의 상태가 넓은 의미의 병이다. 「백병」이란 구체적인 자각. 타각(他覺) 증상을 수반하여 나타나는 여러 가지 질환, 곧 좁은 뜻의 질병을 의미한다.

 

氣의 의학의 병인관(病因觀)

그러면 몸 안의 氣는 어떻게 하여 부조화를 일이키는가. <영추(靈氣)> <순기일분위사시편(順氣日分爲四時篇)>에서는 「백병」이 생기는 원인으로서 조(燥). 습(濕). 풍(風). 우(雨). 음양(陰陽). 희노(喜怒). 음식(飮食). 거처(居處)의 여덟 가지 요인을 들었다.

이들은 내인(內因)과 외인(外因)으로 다시 크게 나뉜다. 습(濕). 한(寒). 풍(風). 우(雨)란 외사(外邪)가 되는 자연계의 氣이며 천후. 기상의 이상을 말한다. 외사가 몸 안으로 침입하여 병이 일어난다. <좌전>의 의화의 이야기에서는 외사를 ‘하늘의 육기(六氣)’라고 칭한다. 특히 「風」은 백병의 시작이라고 하여 외사의 대표로 친다.

저들 외인에 대비되는 내인이 음양(여기서는 房事과 희노(情動의 치우침). 음식(偏食과 暴淫․大食). 주거라는 환자 자신과 관계되는 요인이다.(음식을 섭취하는 物의 寒熱이라고 본다면 外因이 된다).. 외인. 불내외인의 셋으로 분류했다.

후세에 송(宋)나라의 진무택(陳無澤)은 다시 내인(情動)․외인(자연계의 氣)․불내외인(不內外因: 飮食과 과도한 운동 房事등)의 셋으로 분류했다.

風. 雨. 寒. 熱은 허사(虛邪)를 얻지 않고서는 단독으로 사람을 해치지는 못한다. 갑작스런 질풍과 폭우를 만났는데도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은 허사가 없기 때문이다.

허사-이것이야말롤 발병의 원인, 아니 병 그 자체인 것이다. 곧 내인에 의해 몸 안의 기혈이 부조화하게 되면 쉽사리 외사의 침습을 받게 되는 상태(넓은 뜻의 질병)를 허사라고 한다.

신체가 맑고 깨끗하며 정기에 가득차 있으면 설령 기후의 변조(變調)등 외적 요인이 있을지라도 병은 나타나지 않는다. 안팎의 사(邪)가 감응하여서 비로서 구체적인 증상을 수반하는 병이 일어난다. 그것을 <소문> <팔정신명론편(八正神明論篇)>에서는 「몸이 허함으로써 하늘의 허를 만나며, 양허(兩虛)가 서로 감응을 하면 그 기는 뼈에 이르고 오장을 해친다」고 표현한다. 先秦에서 韓初에 걸쳐서 활발하게 주장된 ‘천인 감응’이라는 관념이 여기에 반영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요컨대 내인이야말로 참된 병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병증이 확실하게 겉으로 나타나 있지는 않을지라도, 이미 내인에 의해 몸 안의 기혈이 불균형하게 된 상태를 「미병」이라고 부른다. 「성인은 미병을 고친다.」- 이것이야말로 치료의 이상이라고 하여 「미병」이 되지 않기 위한 양생법이 크게 중시되어 왔다.

내사(內邪: 虛邪)에 감응된 외사(外邪)는 그 종류에 따라 침습되는 인체의 부위가 정해지고 특정한 증상이 일어난다. 예를 들면 음식물의 寒熱은 6부를 해치며, 땅의 습기는 살갗과 살, 그리고 힘살과 핏줄을 다친다. 양인 풍기(風氣)와 서기(暑氣)는 인체의 상부로부터 덮치고, 음인 한기와 온기는 하부로부터 침입한다. 그리고 風. 暑. 濕. 燥. 寒의 5기(五氣)는 목. 화. 토. 금. 수의 오행에 각각 배당되어 마찬가지로 오행에 배당되는 신체 각부와 장부. 경락에 변조를 일으킨다. 이처럼 외사의 침입은 음양론. 오행론에 입각하여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다.

 

국소에 전체를 진단 - 맥진(脈診)과 망진(望診)

병을 치료하려면 정확한 진단이 불가결하다. 중국 전통의학에서는 기의 균형을 보는 데에 주로 네 가지의 진단법이 활용되어 왔다. 망진(望診). 문진(問診). 절진(切診)이다. 이 가운데 절진은 환자의 몸거죽을 더듬어 보는 것인데, 맥진이 중심이 된다. 일본의 에도 시대에는 여기에 더하여 복진(腹珍)이 발달했다.

네 가지 진단법 가운데에서 가장 중시된 것은 절진에 속하는 맥진이다. 고대 그리스나 인도에서도 맥진은 널리 시행되었다. 현대 의학에서도 맥을 보기는 하지만 1분 간의 맥박수라든가 결체(結滯: 심장의 장애나 쇠약으로 말미암아 맥박이 불규칙하게 되거나 잠깐 동안 멈추는 증세)의 유무를 알자는 정도의 것이다. 중국 전통의학에서의 맥진만큼 복잡하고 정밀하면서도 상세한 것은 유례를 볼 수가 없다.

고대 중국에서는 몇 가지 맥진법이 고안되었으며, 내경 의학에서는 세 가지가 설명되어 있다. 그 하나인 ‘삼부구후진(三部九候診)’은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사상에 입각하여 인체를 상. 중. 하의 3부로 나누고, 다시 각부를 3분한 아홉 개의 부위의 맥상에 따라 병상(病狀)을 알려고 하는 것이다. 너무도 복잡하고 대개가 관념적이기도 하기 때문에 후세에 보급이 되지는 못했다.

‘인영맥구진’은 인영부와 촌구부에서의 맥뛰기의 강약을 비교하여 행하는 것이다. 이것도 워낙 번거롭고 어렵기 때문에 거의 보급되지 않았다.

 

가장 정착이 잘된 것은 촌구부만 가지고 하는 ‘육부정위진’이다. 이 방법은 현대에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이것은 촌구부를 다시 촌. 관. 척으로 나누고 좌우 손의 여섯 군데의 깊은 곳과 얕은 곳을 12경맥에 배당하여 기의 균형을 진단하려고 하는 것이다.

맥은 미묘하게 차이가 있는 각양 각색의 상태가 분별되었다. 특히 사철에 따른 맥상을 항상 얻고 있느냐의 여부가 중요한 점이 된다. 사철의 맥상이란 춘이현 하이구 추이모, 동이석 또는 침 등이다. 이 밖에도 다시 몇 가지의 복잡한 맥상. 예를 들면 수. 지. 긴. 활. 색. 미 홍. 약. 세. 완. 결. 장. 단 같은 것이 분류되어 있다. 어지간히 능숙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들을 판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더 이상의 상세한 소개는 생략하지만, 맥진에서는 손목 부근에서 잡히는 약간의 국소적인 상태를 통해 전신의 기혈의 상태를 살펴서 알게 된다. 이런 것이 가능하게 된 배경에는 신체의 부분과 전체가 유기적인 상관 관계에 있다는 인식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원리는 망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망진이란 환자의 피부의 윤기나 모양의 이상을 시각적으로 포착하여 병상을 판단하는 방법이다.

<회남자> <숙진훈>에서는 「몸 안에 병이 있는 때에는 반드시 외부로 색택의 변화가 있다.」고 하였고 편작도 「병의 반응은 몸거죽에 나타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을 임상에 응용하는 것인데, 특히 늘 노출되어 있는 얼굴 부분에 대해서 하는 것이 망진이다.

얼굴에는 장부와 신체의 각 부위가 축약. 투영되어 있다고 생각되었다. 마찬가지 관점에서 귀나 손바닥, 발바닥 등에도 온 몸의 침자리가 다 모여 있다고 생각되어 치료점으로서도 이용된다.

국소를 통해서 전체의 병상을 판단하는 맥진과 얼굴의 망진은 신체의 노출을 싫어하는 환자를 진찰해야만 하는 필요에 따라서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이 뿐만이 아니다.

「전체의 정보는 부분 속에도 새겨져 있고, 부분은 전체를 중시한다.」고 하는 전일적인 인식이 기와 경락의 밑받침을 받아서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나중에 다시 거론하기로 한다.

 

氣의 균형 회복

질병이 몸 안에 있는 기혈의 불균형에서 온 것이라면, 치료란 그 균형을 회복시키는 일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네 가지 진단법에 의해 기혈의 상태를 살펴서 알고 진단을 내린다. 기본적으로 음양 이원의 길항 관계로 파악되며 「허실(虛實)」이라는 말을 가지고 표현된다. 實이란 정기의 과잉 또는 사기의 세력이 왕성한 것이며, 虛란 정기의 결핍이다. 음양과 허실을 조합하면 ①음허양실(陰虛陽實,) ②음실양허(陰室陽虛, ③음실양실(陰室陽實), ④음허양허(陰虛陽虛)의 네 가지 기본 유형이 얻어진다. 특히 장부의 허실은 중요시되었다.

최종적으로 병상은 구체적인 증상의 집합으로서가 아니라 전신의 기혈의 상태를 위에서 든 유형을 바탕으로 하여 표현한 「증(證)」으로서 파악된다. 證에 따른 ‘수증 치료(隋證治療)’가 중국 의학의 특색을 이룬다. 그 경우에는 침구 요법에서나 약물에 의한 치료에서도 「虛는 補하고 實은 瀉한다.」는 것이 대원칙이었다. 補란 부족한 精氣를 보충해 주는 일이고, 瀉란 남아도는 기나 사기를 방출시키는 일이다.

그리하여 補瀉를 시행하기 위한 침구 요법과 약물의 성능 판별(氣味). 조합(調合) 방법이 고안되어 갔다. 기미란 차고 덥고 따스하고 서늘한 것 등의 네 가지 기와 신맛. 쓴맛. 단맛. 매운맛. 짠맛의 다섯 가지 맛을 말하는 것인데, 이 기는 나중에 「성(藥性)」으로서 파악되어 간다.

침술의 경우, 환자가 숨을 내쉴 때에 찌르고 들이 쉴 때에 뽑는 것이 補이고, 그 반대가 瀉이다. 경락의 흐르는 방향으로 찌르는 것이 補이고,. 그 반대가 瀉이다. 침을 뽑은 뒤에 침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누른 것이 補이고, 방치해 두는 것이 瀉이다. 천천히 찌르고 뽑는 것이 보이고, 잽싸게 찌르고 뽑는 것이 瀉이다. 가느다란 침을 쓰는 것이 보이고, 굵은 침을 쓰는 것이 瀉라는 식이다.

약물 치료에서는 後漢의 장중경이 저술한 <상한론>과 <금궤요략>이 원전으로서 존중되었다. 이것들은 「경방(經方)」이라고 불리는 임상에 입각한 실용서인데, 각종의 병증(病證)과 적용돼야 할 처방이 3陰 3陽의 유형을 바탕으로 하여 기술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경락은 별로 고려에 들어가 있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인데, 후세에는 약물이 몸 안에서 어떤 경락으로 들어가 작용하는가를 설명하는 ‘인경보사(引經報使)’의 설이 원.명대 무렵부터 활발하게 주창되게 되었다. 상당히 자의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탕액본초계 의학에서도 경락은 무시할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기의 심신관

마지막으로 ‘내경 의학’에서의 심신관을 점검해 보기로 한다. 요즈음에는 데카르트 이래의 심신이원론의 패러다임을 극복하기 위한 모델의 하나로서 중국 전통 의학의 심신관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요점이 되는 것이 기의 개념인 것이다.

격력한 분노나 슬픔은 몸 안의 기의 균형을 상실시킨다. 지나치게 기뻐하는 것도 마찬가지여서 정동의 치우침은 병의 내적 원인이 된다고 생각되었다. 정동은 오행론의 오장의 배당에서는 간장-성남, 심장-기쁨, 비장-생각, 폐장-근심 또는 슬픔, 신장-두려움으로 친다.

정동의 치우침은 몸 안의 기의 변동을 불러와서 갖가지 질환을 일으키는 내인이 됨과 동시에, 다른 원인으로 기가 변동된 때에는 특정한 정동이 나타나는 일이 있다. 여기에서 기의 개념을 매개로 하는 정동과 질환, 곧 심신의 상관 관계에 대한 인식을 엿볼수가 있을 것이다. 이 심신관은 정신 질환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전형적인 정신 질환에 「전」과「광」이 있다. 전은 ‘전간(간질)’에 해당하고, 광은 감정. 기억. 행동 장애와 환각 등의 여러 가지 정신 장애를 수반하는 질환의 총칭이다.

내경 의학에서는 다른 체내 질환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병증과 병리가 명확하게 파악되어 있다.

간질병의 병증은 「하허상실」, 곧 양기가 올라가 막혔기 때문에 음기가 내려가 기혈의 순환이 정체된 병증이라고 한다. 미친병은 더욱 복잡하며 여러 가지 경우가 있다. 간질병도 미친병도 기의 몸안 통로인 경락과 관계지어지는데, 특히 미친병은 다리의 양명위경의 병동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한다.

상세한 검토는 다른 기회로 미루지만, 정신 질환도 다른 육체적 질환과 마찬가지로 기의 불균형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었다. 고대 중국의 의료인으로서 볼 때에는 신체 증상(질환)과 정신 증상(질환)은 굳이 구별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형이하에서의 온갖 현상을 기가 빚어내는 현상이라고 보는 입장에 설 때에는 마음과 신체의 구별이 해소되고 하나의 것으로 나타난다. 사실 그들은 심신을 「심일기일체」의 기능적 구조의 바탕에서 일체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 전통의 기의 의학에 관해서는 이야기가 미진하다는 느낌이 많이 있지만, 일단은 이상으로 마감을 하고 다음에는 의학과 함께 ‘기의 생명과학’을 형성하는 양생의 사상과 기법을 검토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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