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기타

승찬대사 이야기

별꽃바람 2013. 2. 21. 21:57

깨달음은 글에 있는 것이 아니다.

 

 

空門不肯出 投窓也大痴 百年鑽古紙 何日出頭期

공문불긍출 투창야대치 백년찬고지 하일출두기

 

텅 빈 문으로는 기꺼이 나가지 않고

창문에 가서 부딪치니 너무 어리석도다.

백년을 옛 종이만 뚫은들

어느 날에 벗어날 기약이 있으리오.

 

깨달음은 마음의 문제다. 마음은 공적한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래서 마음의 문을 공문(空門)이라 한다. ‘마음의 문으로는 들어가려 하지 않고 옛 종이인 경전만 읽은들, 언제 생사해탈을 하겠는가’라는 약간 조롱조의 시다. 그러나 아름답고도 귀감이 되는 이야기가 전하여 널리 알려져 있다. - 『선요』

 

중국 당나라 때 복주의 고령사에 신찬(神贊) 스님이 있었다. 처음 출가하여 고향의 대중사라는 절에서 은사인 계현(戒賢) 법사를 모시고 살았다. 그러다가 백장회해(百丈懷海, 720~814) 스님 문하에 가서 깨달음을 성취하고 돌아와서의 일이다.

 

말도 없이 예전처럼 시봉을 하면서 지내는데, 하루는 목욕하시는 은사스님의 때를 밀어드리게 되었다. 때를 밀다가 등을 두드리면서 문득 하는 말이, “법당은 참 좋구나. 그런데 부처가 영험이 없구나(好好法堂 佛無靈驗).”라고 하였더니 은사스님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신찬은 다시, “영험도 없는 부처가 또한 방광은 할 줄 아는구나(佛無靈驗 也能放光).”라고 하였다.

 

좋은 법당이란 육신을 두고 말한 것이다. 영험이 없다는 것은 깨달음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방광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말을 하면 들을 줄 알고 꼬집으면 아픈 줄 아는 일이다. 은사스님은 어리둥절하였으나 무슨 뜻인지를 모른 채 며칠이 지났다.

 

그 후 어느 날 은사스님이 경전을 읽고 있는데, 마침 그 순간 벌 한 마리가 방에 들어와서 열려있는 문으로는 나가지 않고 종이 창문에 가서 부딪치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신찬 스님이 시를 한 수 읊었다. 그것이 위의 게송이다. 은사스님은 이 게송을 듣고 그 때서야 심상치 않은 상좌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자초지종을 물었다.

 

신찬 스님은 행각(行脚)을 하면서 백장 스님 문하에서 눈을 뜨고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계현 스님은 곧바로 대종을 쳐서 대중들을 모으고 법석(法席)을 마련하였다. 상좌를 법상에 올려 앉히고 자신은 밑에서 제자가 되어 법문을 들었다.

 

 

***깨달음엔 순서가 없다.***

 

깨달음은 마음의 문제다. 마음은 공적한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래서 마음의 문을 공문(空門)이라 한다. 마음은 있으면서 없고

없으면서 있는 것이라 무엇이라고 한마디로 단정 지어 표현할 수가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공적영지(空寂靈知)니 진공묘유(眞空妙有)하는 말로

그려보려 한다. 그런데 그러한 마음의 문으로는 들어가려 하지 않고

옛 종이인 경전만 읽은들 언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겠는가라는,

다소 조롱조의 시다.

 

그러나 이 시 한편으로 스승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게 된 아름답고도

귀감이 되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 당 나라 때 복주(福州)의 고령사(古靈寺)에 신찬(神贊)스님이

있었다. 처음 출가하여 고향의 대중사(大中寺)라는 절에서 은사스님인

계현(戒賢)법사를 모시고 살았다.

그러다가 백장 회해(百丈懷海, 720~814)스님 문하에 가서 깨달음을

성취하고 돌아왔을 때의 일이다.

 

말도 없이 예전처럼 시봉을 하면서 지내던 중 하루는 은사스님이

목욕하는데 등를 밀어들이게 되었다.

등를 밀다가 등을 어루만지면서 문득 말하였다.

"호호법당(好好法堂)이여 불무영험(佛無靈驗)이로다"

(법당은 좋고 좋은데, 부처가 영험이 없구나)

그러자 은사스님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신찬은 다시 말하였다.

"불무영험(佛無靈驗)이나 야능방광(也能放光)이라"

(부처는 영험이 없으나 능히 방광은 할 줄 아는구나)

 

좋은 법당이란 육신을 두고 한 말이다. 영험이 없다는 것은 깨달음이

없다는 뜻이다. 출가하여 수행을 하고 나아가서 큰 깨달음을 이룬 뒤

사람들을 제도하는 것이 승려들의 본분이다.

그런데 산중에 깊이 들어앉아 적당하게 독경하고 염불하면서 하루하루

일상적인 신행생활로서 할 일을 다 한 것으로 여기고 산다면

눈을 뜬 사람에게는 참으로 하찮게 보였을 것이다.

 

그 문제에는 스승과 제자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다만 법에 대한

진정한 눈을 가졌는가 하는 것이 지상의 과제일 뿐이다.

그래서 스승이지만 안타까운 마음에서, 그리고 경책하는 마음에서

은사스님의 몸을 어루만지면서 “법당은 참 좋구나. 그런데 부처가

영험이 없구나”라고 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스승은 귀가 있어서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쳐다

볼 줄을 안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영험도 없는 부처가 어찌하여

방광을 할 줄을 아는가. 바로 이 점이다. 이 점이 방광이며 이 점이

영험이라면 또한 영험이다. 방광하는 능력, 그것은 무엇인가.

말을 하면 말을 들을 줄 알고 꼬집으면 아픈 줄을 알고 부르면

대답할 줄 아는 그 일이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신기하고 불가사의하다.

은사스님은 다소 어리둥절하였으나 무슨 뜻인지를 모르고 목욕을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며칠을 지났다.

 

그 후 얼마가 지난 어느 날 은사스님이 햇빛이 밝게 비치는 들창문 밑에서

한쪽의 창문을 열어놓고 경전을 읽고 있는데 마침 그 순간 벌이 한 마리

방에 들어와서 열려있는 문으로는 나가지 않고 닫혀있는 종이 창문에 가서

밖으로 나가려고 계속하여 부딪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상좌 신찬스님이 시를 한수 읊었다.

 

"공문불긍출(空門不肯出) 투창야대치(投窓也大痴)

백년찬고지(百年鑽古紙) 하일출두기(何日出頭期)

 

(텅 빈 문으로는 기꺼이 나가지 않고

창문에 가서 부딪치니 크게 어리석도다

백년 동안 옛 종이만 뚫은들

어느 날에 벗어날 기약이 있으리요.)

 

- <신찬대사>

 

은사스님은 이 게송을 듣고 그 때에야 심상치 않은 상좌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자초지종을 물었다. 행각(行脚)을 하면서 백장스님 문하에서

눈을 뜨고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계현스님은 곧 바로 대종을 쳐서

대중들을 모으고 법석(法席)을 마련하였다.

상좌를 법상에 올려 앉히고 자신은 밑에 앉아 제자가 되어 법문을 듣고

그도 비로소 깨달음을 얻었다.

 

無比/범어사 승가대학장

 

 

 

신찬스님

 

 

옛날 중국에 계현(誡賢)스님이라는 부자 스님이 있었다. 4방 80리를 가도 그의 땅을 밟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천하 인민을 다 만나도 계현스님의 복과 학(學)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유명한 스님이기 때문에 그의 문하에는 유불선에 정통한 수많은 학인들이 모여들었다.

 

하루는 신찬(神讚)이라는 아이가 중노릇을 왔다. 와서 보니 스님의 문하가 융성하기는 한데 진짜 법을 알고 배우는 사람은 없었다. 처음에는 기도를 드리며 의식을 익히다가 다음에는 글을 배우고 선방에 들어가 조금 선 맛을 보았다.

 

그런데 스님께서 하루는 부르시더니 세 명의 상좌를 앞에 놓고,

“너는 유가에 밝으니 유교를 더욱 깊이 배워오너라.”

“너는 도교에 밝으니 노장을 더욱 깊게 연구하여 오너라.”

하여 유교와 도교에 밝은 두 제자에게 명령하였다.

 

그리고 신찬에게는 선방에 가서 도를 공부하여 앞의 두 제자와 함께 천하의 자웅을 가려보라 하였다. 그러면서 스님은 3년 동안 쓸 돈을 하루에 한 냥씩 쳐서 1천 냥이 넘게 주었다. 그러나 신찬은 마음공부를 하러 가는 사람이 돈을 짊어지고 가면 무거워서 도중하차 하기 쉬우니 그냥 가겠다 하여 극구 사양하였다. 그리하여 세 사람은 각기 스승을 찾아가는데 신찬은 그때 백장산의 도인 백장 스님을 찾아갔다.

 

백장 스님은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이라는 엄격한 청규를 만들어 놓고 아침저녁 예불 이외에는 쉴 틈 없이 일을 시켰다. 번뇌가 일어날래야 일어날 틈이 없었다. 3년을 지내고 돌아오니 그의 도반들도 모두 돌아와 있었다.

 

유교를 공부한 사람에게 물었다.

“너는 그동안 무엇을 배워 왔느냐?”

“삼강오륜(三綱五倫)으로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도리를 배웠습니다.”

 

도교를 공부한 상좌에게 물었다.

“너는 무엇을 배워 왔느냐?”

“단전복기(丹田腹氣)로 신선이 되어가는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유교에는 내생(來生)법이 있던가?”

“예, 공자님께서는 전생 이야기나 후생 이야기는 일체 하시지 않았습니다. 단지 죽음 이전에 선행을 하여 자손만대에 덕을 심어 갈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노자님은 신선 이외의 말은 하지 않던가?”

“복이 다 하면 타락하여 다시 인간이 되게 되는 것이니 타락하지 않도록 마음을 무위자연(無爲自然)하게 살라고 하였습니다.”

 

“그럼 신찬은 무슨 공부를 하였느냐?”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저 밥 먹고 일만 부지런히 하다가 왔습니다.”

 

“그래? 하기야 저 사람들은 돈을 짊어지고 갔으니 돈값을 하느라고 애를 썼겠지만 신찬이야 빈 몸으로 갔으니 올 때도 가볍게 올 수밖에.”

 

그리고선 자리를 물렸다. 그런데 그 뒤로도 스님은 매일같이 앉아서 책을 보시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루는 목욕물을 데워 목욕을 하려 하시다가 신찬을 불렀다.

“오늘은 네가 나의 등을 밀어라.”

“예.”

 

신찬은 목욕탕에 들어갔다. 스님은 육덕이 좋았다. 밝고 맑은 살빛에 살이 피둥피둥 쪄서 볼품이 없었다. 신찬은 등을 문지르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법당은 좋다만은 부처가 영험이 없도다.”

 

스님이 그 말을 듣고 뒤돌아보니 이렇게 중얼거렸다.

“영험은 없어도 방광(放光)은 잘한다.”

 

목욕을 하고 나서 한숨 주무시더니 일어나서 글을 보고 있었다. 마침 그때 벌 한 마리가 방안에 들어왔다가 나가지 못하고 창에 부딪쳐 방바닥에 떨어지고 또 떨어지곤 하였다.

 

신찬이 말하였다.

“빈 구멍을 즐겨 찾지 못하여 창에 부딪쳐 떨어지는 어리석은 놈아. 백년을 고지(古紙)를 뚫고자 한들 어느 날 벗어날 기약이 있겠느냐?”

 

이 소리를 듣고 스님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너 무엇이라 하였느냐?”

“벌이란 놈이 방에 들어와서 나가지 못하여 이런 시를 하나 지었습니다.”

 

“그래, 무슨 시냐? 한번 보자구나.”

“공문불긍출(空門不肯出) 투창야대치(透窓也大痴) 백년찬고지(百年讚古紙) 하일출두기(何日出頭期).”

 

이 이야기를 듣고 스님은 그 자리에서 깨쳤다.

“너 백장 스님에게 가서 일만 하였다고 하더니 진짜 공부하고 왔구나!”

하면서 칭찬하였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진짜 백장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 크게 놀라실 것입니다.”

“뭐, 백장 스님의 법문이라고. 그 법문은 어떤 것이냐? 어서 한번 들어보자.”

“그거야 그렇게 쉽게 들을 수 있습니까? 법답게 들어야지요.”

 

스님은 곧 북을 치고 종을 쳐서 대중을 모아 법좌를 마련하고 상좌를 높이 올려 모셨다. 그리고 청법게를 하여 큰절로 3배를 하였다. 상좌에게 스님이 절을 한 것도 기이하지만 스승의 절을 받고 있는 상좌 또한 기이하였다.

 

그러나 신찬은 이미 신찬이 아니다. 오늘은 백장을 대신하여 설하는 법문이라 바로 백장이기 때문이다. 신찬이 소리 높여 외쳤다.

 

“신령스러운 빛이 홀로 드러나 육근 ·육진의 경계를 벗어나 있도다. 그 드러난 참모습이여, 문자에 구애함이 없어라. 참된 성품은 물듦이 없어 본래부터 스스로 원만히 이루어져 있으니 단지 망령된 생각만 여의면 그대로 부처로다.”

 

이 얼마나 간결하고 적절한 시인가?

스님은 이 말씀을 듣고 그대로 망령을 여의고 그대로 부처가 되었다. 그리하여 스승 상좌와 함께 백장의 법을 이었으며, 후세 많은 구도자들의 좋은 본이 되었다.

 

4대가 각기 꿈 가운데서 흩어지고 육진·심식이 모두 공하도다.

부처님과 조사들이 깨달은 곳을 알고자 하는가?

서산에 해 떨어지면 동산에 달이 솟느리라.

 

나를 알고 나를 움직이는 놈을 알았으면 자연에 돌아가는 것은 정한이치다.

천하 귀인도 땅속에 들어가면 한줌의 흙이 되고 천하 미인도 코 밑에 숨결이 지면 불러도 대답 없고 소리쳐도 듣지 못한다.

 

누가 해 떨어지면 달뜨는 이치를 알아 흙밥 속에서 회광반조(廻光返照)의 불조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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