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사람들이 종교를 대하는 시각과 이향봉스님의 철학이 드러나는 글인 듯 싶어서 옮겨 봅니다.
낙뢰와 교통사고
사내들 셋이 모이면 군대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번엔 내가 군복무 시절에 만난 이야기 하나 해야겠다.
계급은 하사, 장기가 아닌 단기 하사였다. 군복무 3년을 군복이 아닌 삭발한 채 승려복 차림으로 지내게 된다.
‘이기자 부대’ 의 사창리 법당에서 법사 노릇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장교 법사의 인원이 모자라 하사 신분에 사단의 법사 지위에 오르게 된 셈이다.
한 달에 한 차례씩 군종참모(목사였다) 주관 하에 3개 연대에 1개 포병 연대까지 합쳐 모이는 성직자 모임이 있었다.
목사님들은 대개가 술도 담배도 사양하는 쪽이었고 신부 한 분은 구수한 분이였다. 다 장교인데 법당 쪽만 하사, 말단의 자리는 항시 내 차지였다.
그런데 79연대의 허 목사는 항시 솔직했고 무엇이든 털어놓는 스타일이었다. 허 목사가 모임 자리에서 말하였다.
신학도 시절 여자 문제로 방황하고 갈등을 겪을 때 시골 교회를 찾아가 마음을 다잡는 회개의 기도를 며칠 동안 올린 적이 있었다 한다.
하룻밤 에는 하나님이 허 목사 앞에 나타나 성경 한 권을 던져 놓는데 펼쳐보니 ‘여자 조심하거라’ 라고 쓰여 있더란다. 허 목사는 말하였다.
하느님은 흰 도포자락에 흰 수염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고.
허 목사가 만난 하느님은 허 목사가 만들어낸 산신령 같은 하나님이었을 것이다.
만일의 경우 허 목사가 흑인이었다면 흰 도포가 아닌 중요한 부분이나 야자잎으로 가리고 쫄랑거리며 검은 피부로 나타났을 것이다.
하루는 비 오는 날, 포병연대의 교회에서 목사님을 도와 근무하는 중사 한 분이 법당에 찾아 왔다.
포병 연대의 목사님이 벼락을 맞아 죽은 불상사가 일어난 다음날의 일이었다.
“법사님, 아시겠지만 목사님이 벼락을 맞아 운명하셨습니다. 착한 분이셨고 목회자로서도 모범적인 인자한 분이셨는데. 어제 밤늦게 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다가 개종(改宗)까지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법사님의 따뜻한 인도를 바랍니다.”
하여, 나는 그 중사에게 며칠 전에 세계 토픽 란에 난 태국 불교계의 최고 지도자 스님이 방콕 시내에서 차바퀴에 끼어 죽은 사진과 기사를 보여 주며 따끔하게 말하였다.
“중사님이 의지하고 믿었던 목사님은 낙뢰 사고로 세상을 떠나셨고 태국 불교계의 최고 지도자 스님은 차바퀴에 끼여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 이제 중사님은 기독교도 불교도 아닌 어떤 종교를 찾아 떠나실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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