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가게 성자 중에서
모든 종교가 안고 있는 가장 위험한 요소가 바로 무지와 맹신이다. 종교란 깨달은 사람의 지혜로운 가르침을 배우고 따르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종교에 깊이 빠지면 빠질수록 지혜와는 거리가 먼 모지와 맹신의 노예가 되고 마는 것일까?
바로 배우는 자들의 관점에 잘못이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로 깨달은 사람이 '나'라고 할 때는 본래 성품인 '절대'를 의미하는데, 그 말을 보고 듣는 사람들은 '나'를 현상 세계에 투영된 그림자에 불과한 '개체적 자아'로 받아들인다.
불경을 읅을 때는 붓다의 관점에서 읽고, 성경을 읽을 때는 예수의 관점에서 읽어야 그들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복을 비는 신앙인의 관점으로는 백년, 천년을 공부해도 참뜻을 이해할 수 없다.
이처럼 진리를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하기에 부처님은 팔정도 중에서도 제일의 덕목으로 정견(正見)을 내세운 것이다.
부처님은 나라는 실체도 없다고 말씀하시고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아 정진하라 당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불교는 붓다를 경배의 대상인 신으로 만들어 놓고 염불이나 하면서 복을 빌고 있다. 이는 타력신앙인 기독교와 별반 다르지 않는 모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독립된 개체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신이나 깨달은 스승으로부터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열심히 기도를 하고 성금을 내고, 공양을 바친다. 이런 맹신성을 이용하여 세상에는 많은 사이비 스승들이 축복을 내리네, 가피를 내리네 하면서 혹세무민하고 있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은 너와 내가 둘이 아님을 안다. 스승과 제자가 따로 존재하지 않음을 안다. 진리를, 구원을, 깨달음을, 스승을 밖에서 찾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이미 내면에 다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개체인 내 안에 들어 있다는 뜻이 아니라, 개체로서의 내가 사라질 때 모든 것이 하나라는 뜻이다.
"참나는 절대진리 그 자체다."
어떤 생각이 떠 올랐을 때 그냥 생각이라고 보지 못하고 나의 생각 또는 너의 생각이라고 규정짓는 것이 바로 분별심이고, 좋은 생각 또는 나쁜 생각이라고 단정짓는 것이 시비심이다. 그냥 생각을 이차적으로 상대적 개념화를 시킨 것이 시비분별심이다. 어떤 생각과 말과 행위를 나니 너니, 옳으니 그르니 하고 시비 분별만 하지 않으면 절대 참나에 의해 펼쳐져 있는 그대로의 진리적 모습인 것이다.
종교란 진리를 깨달은 스승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깨닫지 못한 종교가들에 의해 시비분별적 교리로 변질되어 혹세무민하는 집단으로 왜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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