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관련

精神科學과 四象醫學(도올 김용옥)

별꽃바람 2009. 8. 28. 12:47

금오산님 덕분에 요즘 사상의학에 대한 토론이 깊어 지고 있어 예전에 보았던 자료를 하나 올립니다. 그런데 이런 글들이 평범한 회원(?)들에게 너무 어렵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근취저신 원취저물하라 했는데 너무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도 하고요.ㅠㅠ 하긴 이 글에서도 통찰을 강조했네요.^.^

 

아래 글은 도올김용옥선생의 글입니다. 제자가 정리하여 올린 것인데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저보다 공부가 많이 되신 분들은 이해가 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래 글 중에 제가 추천하고 싶은 것은 "티벳 사자의 서"라는 책 소개가 나오는데 우리 회원님들이라면 꼭 읽어 보았으면 합니다. 한동석님의 "우주변화의 원리"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지만 많은 발전이 있을 것입니다.

 

 

 

精神科學과 四象醫學

 

 

0. 이 글은 김용옥선생님이 1995년 6월 10일 원광대에서 精神科學과목의 REPORT로 제출하신 글 이며, 이글을 발췌한 곳은 도올서당의 회지인 [도올古新]의 第 二 新(1995.10)에서 입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나오는 필기체는 제가 이 글을 읽으면서 낙서(?)한것들을 대충 정리한 것 인데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네팔에 사는 티벳인들은 아침마다 고요한 히말라야산의 대기 속에서 이렇게 외치곤 한답니다. 게오!게오! 수밤 아추사르바자탐!(모든 존재가 행복을 발견하기를!) 여러분들도 젊음을 바치고 있는 한의학이란 학문에서, 그리고 항상 나를 지켜 봐 주는 情人으로 부터 행복을 발견하시기를...

 

 

1. 헤겔은 절대정신을 말하였다. 이 절대정신이란 데카르트의 코기탄스(cogitans) - 데카르트가 정신(cogitans)과 물체(extensa)를 나눌 때 정의한 용어 - 가 확대된 것이다. 데카르트의 코기탄스가 절대이성에까지 확대되어나간 역사가 곧 서구라파의 근세이성의 역사이며 계몽주의(enlightenment)의 본질이며 근대성(modernity)의 핵심이다. 그런데 데카르트의 코기탄스는 바로 정신과 육체(정신)의 이원적 실체성을 주장하는 心身二元論(body-mind dualism)위에 서있다. - 결국 서구라파의 근대 사상은 모두가 데카르트의 心身二元論에 근거한다는 얘기죠.그리고 이런 사상을 물리적으로 풀어내어 우주를 설명한 뉴튼도 빼 놓을 수가 없겠죠.이 두 사람은 저희 한의학도에겐 부정적(?)으로 낯익은 사람이죠.유기론적 사고,홀로그래피(holo-graphy, 사진건판의 어느 한 부분이 전체의 영상정보를 모두 포함하는 가히 혁명적 영상기술.이 기술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에 새로운 사상적 기반을 제공하게 됩니다. 이것은 동양사상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부분(多)과 전체(一)가 이루는 조화의 실재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양자물리, 新과학운동, 문명의 전환, 사상의 전환(이와 같은 현대 서양의 학문적 흐름, 전환에 대해서는 來場學會(아마 아실분은 아실거고 모르시는 분은 모르실 거예요?!)에서 논의한는 저 자료가 있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올려 드리겠습니다.) 같은 말들을 좋아하희에겐 말이죠..그래도 이 두 사람은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인물임에는 틀림이없죠. ‘시대는 사상을 낳고 사상은 시대를 이끌어 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주인공이 바로 이 두사람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이 말의 주인공이고자하는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도올 김용옥 선생님입니다.(물론 우리 모두의 학문적 포부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문명과 시대를 이끌어갈 사상으로 기철학을 구상하고 계시죠. 이젠 한의학 공부의 과정을 거치어 좀더 완숙된 체계를 구성하셨으리라 봅니다. 에고고... 잡담이 너무 길어졌군요. 여기에 대한 더 자세한 것은 도올 선생님의 책인 [대화]의 p181을 참조하세요. 짧은 글이지만 동서의 전체적인 내용을 영감이 번듯이는 글로 쉽게 풀어 쓰신 글입니다.

2. 절대정신은 역사(시간)밖에 있다. - 희랍철학(여기선 서양의 근대철학까지로 볼 수 있습니다.)에서 말하는 진리(절대이성)는 불변을 의미합니다. 즉 모든 것은 시간 속에서 변하기 때문에 虛象일 뿐이며, 단지 시간밖의 영원불변한 것 만이 진리라는 말입니다.그래서 모든 학문의 방향이 인간 삶의 밖에 있는 유일신으로서의 神性,절대불변의 법칙을 향해 있었던 것 입니다.그리고 종교에 있어서 죽음의 극복도 육체와 영혼(정신)을 철처히 나누어, 변하는 육체는 이 세상에 남고 불멸한 영혼이 천국으로 가서 영원한 삶을 누린다고 여겨 왔습니다.그래서 역사,시간이 창조에서 종말로 이어지는 일직선적인 개념으로 자리잡게 된 것 이죠.여기에 반해 동양에서는 時中의 道를 추구해 왔습니다.즉 진리는 변하는 것이다.이 변화야말로 진리인 것 이다라고 말이죠. 그래서 모든 학문의 방향도 시간내의 時中의 道에서 찾게 되었고, 종교(?)에 있어서 죽음의 극복도 天地人의 조화라는 시간, 자연(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환경)내에서 추구해온 것 이죠. 도올 선생님은 여기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이런 맥락에서 볼때 불교는 서양의 사고체계이다. 이런 東(유교),西(불교)의 중간 연결의 노력을 대승불교가 해 왔다”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영혼에다 identity를 부여해서 죽어서도 삼룡이는 삼룡이, 도올은 도올이라는 말인데 반해, 유교에서는 죽음과 동시에 육체도 영혼도(이렇게 단순히 나누어 지는 것도 아니지만... 도올은 이 둘을 하나의 몸(MOM)이라는 자기만의 고유한 언어로 정의 내리기도 했죠)모두 identity를 잃어 버린다고 보아왔습니다. 하지만 육체에 비해 정신의 identity가 멸하느데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거죠. 아뭏튼 여기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 보아야 될것도 많지만 여기서 접기로 하죠.죽음에 관한 것은 우리 삶의 영원한 숙제이니까요! 그리고 죽음의 문제에 대한 좋은 책을 한 권 소개 해드릴께요. 정신세계사의 [티벳 死者의 書]라는 책인데 너무도 유명한 책이라 설명이 필요 없겠죠.우리 시대의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求道者인,제가 너무나도 좋아하고 존경하는,류시화아저씨께서 번역 하신 책입니다.여러 유명한 학자들의 서문도 모두 번역(프로이드의 한계(?)를 뛰어넘은 위대한 심리학자인 칼융의 서문도 있습니다)되어 있습니다.우리나라에 나온 번역서 중에서 가장 나으리라 생각합니다.여러분의 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되니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에고,또 옆길로 한참을 샜군요! 도올 선생님의 말을 더 붙이며 여기서 접을께요. ‘동양의 영원이란 개념은 한 개체는 유한하지만 역사적으로는 무한하다. 즉 시간내에서의 지속성을 의미한다.!!’ - 그런데 절대정신은 역사속에서 자기를 현현시킨다. 이 자기현현의 방법론이 正-反-合의 변증법이다. 자기현현의 完成은 곧 歷史의 終了이다. 그것이 終末論(eschatology)이다. 종말론은 모든 심신이원론의 귀결이다. 심이 신에서 분리되어 있으며 실체화되어 있으며 그것이 역사와 결합할 때는 태초와 종말을 갖는다.

 

3. 프로이드는 뉴토니안 매케닉스의 구조속에서 인간의 인격구조(personality structure)를 파악하였다. 그것은 일정한 界속에서 이루어진다. 슈퍼이고, 이고, 이드는 이러한 界를 갖는 일정한 심적에너지 용량내에서의 역학관계이다. 융은 이러한 界를 타파해버릴려고 애쓴다. 그의 집단무의식(The collective unconscious)도 이러한 노력의 소산이다. - 융은, 집단무의식을 윤회의 흔적이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한 구절은 제가 본적은 없지만 그의 여러 표현들에서 비슷한 인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즉 모든 인간들에게서 볼수있는 집단무의식을 단순한 DNA의 물리적(?) 차원의 유전으로만 보지 않는 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프로이드학파에서도 윤회를 직면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환자에게 최면을 걸어 무의식 상태에서 과거의 일을 들추어 내게하면 자기가 태아일때의 기억, 즉 자궁속에서의 일들을 기억해 낸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의 과거로의 추적을, 가끔 그런 경우(전생을 기억해내는 환자)를 보더라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기에 대해 융은 이렇게 애기합니다. “자신들이 스스로 만든 한계때문에 과학의 진보(넓은 의미)를 막았다. 그리고 기독교 교리에 담긴 최소한의 신비사상들조차도 설명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현존하는 생물학적 개념과는 완전히 다른 철학적 준비(이것이 도올이 하는 작업이자 우리 한의학도들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될 문제입니다)가 있어야만 할 것 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기독교외에도 윤회라든가 동양의 순환과 천지의 조화와 같은 개념(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을 얘기하는 여러 신비주의적 경향의 기독교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외에도 여기에 바탕을 두어 우주와 인간을 해석하는 여러 신비주의적 사상과 종교가 많이 있습니다. 피타고라스나 플라톤, 플로티누스, 프랜시스 베이컨,케플러같은 현자들도 여기에 가까운 인물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그노시스학파(gnosis), 유럽 켈트족의 드루이드교. 배화교, 고대 이집트인의 사상등 동양의 개념과 비슷한 사유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지구 도처에서 너무도 비슷한 직관들을 볼수 있습니다! 時空의 전후좌우에서 말입니다. 아뭏튼 이 쪽에도 관심을 가져 보시면 흥미로운 것 들을 많이 느낄 수 있을 것 입니다.(한의학과 비슷한 철학적 사유를 배경으로한, 은유학으로 대표되는 여러 민족의 전통의학같은거 말이죠..)

4. 프로이드가 말하는 인격구조는 몸의 구조(structure of MOM)가 아니다. 그것은 역시 몸과 분리된 정신만의 구조이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의 長處는 바로 정신의 문제는 정신의 분석만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새로운 주장에 있었다. 따라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도 몸과 유리된 2원론적 실체로서의 정신을 순화시킨 것에 불과하다.

 

5. 플라톤은 이데아를 말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누우스(nous, 정신,이성,전체를 지각하는것,미리 모든 것을 향해 있는 것)를 말하였다. 모두 헬레니즘의 소산이지만 거기에는 희랍특유의 형식주의(formalism)와 기하학주의가 깔려있다. 이데아는 관념이요 이상이다. 이데아는 형상을 창조하는 능력이며 그것은 선험적이요 선천적인 것이다. 헬레니즘(hellenism, 그리스 문화+오리엔트 문화)이나 헤브라이즘(hebraism, 고대 유대인의 기독교가 계승하여 순화시킨 문화)을 막론하고 “선천성”(transcendentality)이라는 “存在이전”이라는 허구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6.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의 필연” 이라는 인식은 관념적인 것 이다. 보편적 관념은 곧 언어의 고도화, 추상화 단계에서 발생한다. - 여기에 대해 도올 선생은 이런 표현도 하셨습니다. “종교란 언어 쇼크에 지나지 않는다.(Relion is a language-shock)" - 종교의 주제는 신이 아니라 죽음이다. 죽음과 더불어 종교가 생겨났고, 종교는 죽음을 극복하려는 노력이라 말할 수 있다. 죽음은 유한성의 인식이다. 죽음의 극복은 유한성에 대한 무한성,유한성의 설정이다. 그 영원한 것을 인간에게 있어서 “영혼”이라고 생각하였고 그것이 진화된 문명의 철학에서는 “정신”“이성”으로 된것이다.

 

7. 예수의 자기이해도 결국 이러한 영원성으로서의 “빛” “말씀”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것이 곧 영지주의(gnosticism)세계관의 본질이며 모든 샤마니즘(shamanism)에 공통되는 것 이다.

 

8. 인간에게 있어서 魂은 魄과 분리될 수 없다. 혼과 백의 분리는 인간의 죽음을 의미한다. 허나 더 중요한 것은 죽음이후의 혼과 백의 운명이다. 혼이나 백이나 모두 그 생체의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氣로 散한다. 다시 말해서 혼이나 백이나 一氣일 뿐이다. 혼의 영속성을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불교(인도철학), 헤브라이즘, 헬레니즘은 일치한다. 중국인의 기철학적 세계관에서는 혼의 영속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9. 혼과 백은 二元的 實體가 아니다. 혼과 백은 渾元之一氣의 二名일 뿐이다.

 

10. 渾元之一氣가 輕淸者(정미)와 重濁者(조야)로 분화되는 것을 개벽(開闢)이라고 한다.

 

11. 개벽의 결과로 태어나는 것이 天과 地이다. 천과 지를 하나의 코스몰로지적인 고유명사로 파악한 것은 戰國末에서 漢初에 이루어 졌다. 이것은 중국인의 유니크한 天地코스몰로지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다.

 

12. 天은 하늘이 아니고 地는 땅이 아니다. 天과 地는 하늘과 땅이라는 보통명사로 이해되어서는 아니된다.

天은 形而上者요, 무형의 세계며 道의 세계다

地는 形而下者요, 유형의 세계며 器의 세계다.

무형과 유형은 물질과 정신이라는 두개의 실체가 아니라 형에서 통섭될 뿐이다. 形而上者와 形而下者는 形이 있고나서(而) 위(上) 아래(下) 일 뿐이다. 이때의 形이란 무엇인가? 이 形은 天地인 동시에 몸(MOM)이다. 몸속에서 上과 下가 곧 道와 器이다.

 

13. 천지코스몰로지는 물리학이나 천문학적인 세계관이라기 보다는 생물학적인 세계관이다. 천지가 하나의 유기체(organism)이며 몸(MOM)이다.

 

14. 몸은 소우주가 아니라 대우주다. 개체발생(個體發生, 개체가 알에서 발생하여 완전한 개체로 되기까지의 과정)이 계통발생(系統發生, 어떤 생물이 원시상태로부터 현재까지 거쳐온 진화의 과정)을 반복한다는 설의 핵심적 논리를 소략하게 받아 들인 다면, 몸은 계통발생과정의 모든 우주적 진화의 가능성을 압축하고 있다. - 칼융은 여기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무의식의 세계에는 인간의 모든 과거가 완벽하게 저장 되어 있다.”

 

15. 몸의 천지코스몰로지적 이해의 가장 핵심적 성격은 그 천지의 上下 관계에 있으며 그것은 몸에 있어서 直立(homo erectus)의 특성으로 나타난다.

 

16. 신유학적 세계관에서 식물은 逆生者라 하였고 동물은 橫生者라 하였고 인간은 立生者라 하였다. - 이러한 얘기는 금오 선생님의 글에서도 자주 볼 수 있죠. - 逆-橫-立의 과정은 진화의 과정을 말해준다. 동물의 動性은 逆生의 逆性이 부정된 사태를 말하며 이것은 神經의 진화와 관련이 있다. - 도올은 말한다! “인간은 직립과 함께 몸의 음양도 바뀌었다. 즉, 직립과 함께 등쪽이 陰이 되고 배쪽이 陽(직립했을 경우 햇빛을 받으므로)이 되는 것이다. 지금 보편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경락체계는, 배쪽엔 陰경락인 六臟(한대 이후 경락체계가 확립되면서 육장육부로 이해된 것이고, 한대 이전 경락체계가 구체화 되기전에는 오행에 비추어 오장육부라 불렸던 것입니다.)의 경락이 흐르고, 등쪽엔 陽경락인 육부의 경락이 흐른다고 이해하고 있는데, 이런 구조는 잘못된 것이고 이구조는 바뀌어야한다.즉 臟이 陽이고 부가 陰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권도원 선생님의 경락학의 새로운 출발인 것이다.” 이런 언급은 선생님께서 공식적(?)으로 하신게 아니라, 1995년 여름 도올서원 ‘도덕경 42장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萬物負陰而抱陽’강의 중에 여담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운만 띄우지만 졸업후 임상 자료와 함께 모든 학문적 결과를 밝히 겠다고 하셨습니다!!

 

17. 神經의 진화는 몸에 있어서 形而上者의 진화와 일치한다고 보아야 한다.

 

18. 地方에서 人倫으로 世會로 天時로 나아가는 과정은 몸에 있어서 땅에서 하늘로 확대되는 과정과 같다. 그것은 공간적 확대며 동시에 진화의 과정이다. 이 진화의 과정은 인간의 체질을 구성한다. 이것은 구한말의 외로운 哲人 東武의 立論이다. - 도올曰 “자율신경의 음양구조를 우리는 교감신경(sympathetic nerves),부교감신경(parasympathetic nerves)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길항을 우리는 ”中庸“(homeostasis)이라 부른다. 中庸은 時中이며, 時中은 역동적 평형(dynamic equilibrium)이다...중략...東醫에서 말하는 모든 체질은 궁극적으로 교감신경항진성 체질과 부교감신경항진성 체질로 大別될 수 있는 것 이다. 전자를 심파티코토니아(sympathicotonia)라 부르고 후자를 바고토니아(vagotonia)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심파티코토니아와 바고토니아의 생리현상에 대한 경락적 전략을, 全身性경락(holistic meridians)인 心經-小腸經, 心包經-三焦經 上에서 짤 수 있다”, [너와 나의 한의학] p566~569 참조 해보세요.

 

19. 地方·人倫·世會·天時는 天機로 말한 것이고 그것을 人事로 말하면 居處·黨與·交遇·事務가 될 것인데 이것은 四象의 성격적 내용을 규정하는 말이기도 하다.

 

20. 直立人間에게 있어서 耳目과 肺脾는 形而上者요, 鼻口와 肝腎은 形而下者다. 形而上者는 天이요 形而下者는 地다. 形而上者는 上焦요 形而下者는 下焦다. 헌데 上者와 下者사이에는 中上者와 中下者가 있어 이것이 中焦를 형성하지만 東武에게서 中焦는 실제적 의미가 없다.

 

21. [東醫寶鑑]에서 말하는 精.氣.神은 바로 下焦.中焦.上焦의 개념을 말한 것 인데 精은 생식기능(reproductive function)을, 氣는 소화기능(digestive function)을, 神은 정신기능(mental function)을 대략적으로 말한 것이다. 天地의 개벽에 있어서 天은 神으로 地는 精으로 분화되었는데 그 사이에 있는 것이 渾元之一氣이다. 다시 말해서 精과 神이 곧 한 氣의 두 양태(two modalities)인 것이다.

 

23. 氣는 하늘이며 上焦며 血은 땅이며 下焦다. 氣는 耳目으로 들어가고 血은 鼻口로 들어간다.

 

24. 血管은 존재치 않는다. 血脈이 존재할 뿐이다. 血管은 폐쇄계(closed system)이며 血脈은 개방계(open system)이다. 혈은 항상 기와 교섭함으로써 존재한다. 혈은 기에 영향을 주고, 기는 혈에 영향을 준다. 혈의 운동은 심장의 박동으로만 다 설명될 수 없다. 폐쇄계가 아닌 개방계에 있어선 운동의 진원이 一者적 실체일 수 없는 것이다.

 

25. 心은 東西古今을 통하여 ‘정신작용’(mind, mentality)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런데 心은 혈의 저수지다. 그렇다면 정신은 심장에서 뇌로 이동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心이 血이라면 血脈도 心이다. 몸에 있어서 모든 모세혈관도 心으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血은 곧 心이며 이 血의 운행과 관련되는 것이 神經이다. 이 신경의 집합이 뇌일 뿐이다. 뇌는 氣의 한 양태이다.

 

26. 말초신경과 중추신경의 이해가 거꾸로 되어있다. 말초에서 중추가 진화된 것이지 중추에서 말초가 진화된 것이 아니다. 말초가 本이며 중추가 末이다. 모세혈관과 말초신경은 血과 氣의 문제로 환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血에는 氣가 있다. 血脈이라는 땅이 있는 곳에는 반듯이 하늘이 있다. 이 하늘의 집합이 뇌라면 心과 腦는 이음동의어일 뿐이다.

 

 

27. 몸은 솔리디티(solidity)가 아니다. 몸은 “공간점유체”가 아니라 “공간관계체”이다. 몸속에는 광막한 공간(space)이 있다. 몸속에는 어디에든지 광막한 하늘이 있다. 몸을 세포의 집합으로만 이해한 서양의 해부학(anatomy)은 몸의 땅만을 말했을 뿐이다. 몸의 하늘은 “기능”이라는 말로 대변하고 있으나 그 확고한 코스몰로지적, 인식론적 근거가 없다. 비트포겔이 중국문명을 “수리문명”이라고 말한 것은 血氣論的 세계관과 관련시켜 그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

 

28. 땅은 陰이고 하늘은 陽이다. 허나 땅은 땅자리에 있어서만 안되고 하늘은 하늘자리에 있어서만 안된다. 그것은 否다. 하늘이 땅속에 있고 땅이 하늘속에 있을 때만 생명체는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음속에는 양이 있어야 하고 양속에는 음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坎離水火論의 내용이다. 생명은 중용이나 그 중용은 호미오스타시스며, 호미오스타시스는 반드시 逆位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逆位가 없는 평등은 중용이 아니라 죽음이다. 逆位의 대표적인 사태가 세포에 있어서의 액션포텐셜(action potential, 활동전위)이다.

 

29. 肺脾와 肝腎은 上下焦의 陰陽升降의 의미를 갖는다.

 

30. 이제마는 肺와 肝의 관계에 대해서는 뚜렷한 병증약리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의 이론의 출발점이 바로 天地上下의 직립인간론에 있었기 때문이다. 음양승강의 병증약리가 성공한 것은 비와 신의 관계에 있어서 이다. 소양인과 소음인의 분석은 중국 문명 水火論의 총결이라고 말할 수 있다.

 

31. 비는 양장기이지만 음(表陰, 裏陰)으로만 설명되고 신은 음장기이지만 양(表陽, 裏陽)으로만 설명된다. 腎은 升되어야만 腎이고 脾는 降되어야만 脾이다. 腎이 升안되는 것이 亡陽이고 脾가 降안되는 것이 亡陰이다. 亡은 “갈길을 잃어버렸다.”는 뜻이고 亡의 발전은 “鬱”이다.

 

32. 肺脾肝腎은 必然의 세계다. 必然이라 함은 天理의 大同을 말한 것이다.

 

33. 이 必然의 관계는 太小陰陽의 臟局短長의 四象으로 나타난다. 四象은 必然이며 先天이며 聖人과 衆人에게 一同한 것이다.

 

34. 허나 인간론은 필연으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인간의 하늘이란 하늘 속의 하늘이며 그것은 자유의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몸속에 하늘에 구애받지 않는 또 하나의 하늘을 창조하였다. 그 하늘이 곧 心이다.

 

35. 心은 五臟 중에서 肺脾肝腎의 四維之四象을 뛰어넘는 中央之太極이다. 四象은 聖人과 衆人이 旁通하지만 太極은 聖人의 太極이 衆人의 太極을 高出한다. 여기서 旁通이라 함은 동일한 자연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하는 것이요, 高出이라함은 도덕적 우열이 존재한다 하는 것이다. - 四라는 숫자의 출발은 易象에서 말하는 四象이 아니요, 孟學이 말하는 四端(仁義禮智)이다. 따라서 東武之學의 출발은 易學이 아니라 孟學이다. 東武는 본인이 자신의 철학이 [주역]적 상수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임을 누차 강조해서 말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太少陰陽(太陽,太陰,少陽,少陰)은 단지 신체의 형태학적 상하를 말하는 것일뿐이다. 그리고 그 상하에 장리를 배속시킨 것이다. [기옹은 이렇게 말했다] p127中, 또 이책 p124~129를 읽어보시면 참고가 되실거예요

 

36. 浩然之氣는 肺脾肝腎에서 나오고 浩然之理는 心에서 나온다. 여기에 氣와 理의 二分이 존재하나 氣는 몸의 필연적 측면을 말한 것이요 理는 몸의 자유적 측면을 말한 것이다. 浩然之理가 있기 때문에만 인간에게는 도덕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도덕성이란 聖人之心의 달성이다. - 浩然之氣: 肝,腎,脾,肺 (물리적 세계,필연의 세계,氣의 세계) 浩然之理: 心 (폐비간신과 같은 장기이면서도 폐비간신이라는 장기를 초월하는 존재, 자유의 세계)

 

37. 폐비간신에 [中庸] 제 1장의 哀怒喜樂이 배속되고 있다. 哀라는 하나의 감정에도 遠散과 促急이라는 시간성상의 두 측면이 있다. 원산은 性을 형성하고 촉급은 情을 형성한다. 性은 한 장기를 盛케하며 情은 한 장기를 削케한다. 性情은 재래유학이 말하던 도덕성(性)과 정욕(情)의 이분적 엔티티가 아니라 한 감정의 다른 측면일 뿐이며 그것은 철처히 肺脾肝腎이라는 장기에 예속되는 속성이다.

 

38. 폐비간신의 애노희락은 藥理로 다스려질 수 있다. 약이라는 것도 天地의 物事이며 그것은 性情의 편향체이기 때문이다. 약리의 승강으로 上下焦의 승강이 콘트롤 될 수 있다.

 

 

38. 그렇다면 哀怒喜樂이라는 性情과 心의 관계는 무엇인가? 心은 곧 性情으로 환원될 수 있는가? 宋儒 張橫渠는 “心統性情”을 말하였다. 전통적으로 性과 情의 외연의 합이 心의 외연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았다. 허나 이제마는 性과 情의 외연의 합이 心의 외연의 지극히 작은 일부라고 보는 것이다.

 

40. 哀怒喜樂의 性情이 곧 心의 전체가 될 수 없다. 心의 문제에 있어서 애노희락은 지극히 작은 부분이지만 인간론의 가장 원초적 기저를 형성하며, 이 기저는 藥理로 콘트롤 될 수 있다. 허나 약리로 性情은 콘트롤되지만 心을 다 콘트롤 할 수는 없는 것이다.

 

41. 性情은 인간존재의 본원이다. 인간존재의 일상적 기저는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다. 이 性情은 어느정도 藥理에 의하여 예측이 가능하다. 약으로 哀한 사람을 怒하게 할 수 있고 怒한 사람을 哀하게 할 수 있다. 허나 약으로 수학을 잘하게 만든다든가 비도덕적인 인간을 도덕적으로 만든다든가 할 수 는 없는 것이다.

性情에서 心의 가능성까지는 수없는 중층적 단계가 존재한다. 이러한 性情을 초월하는 心의 문제는 이제마는 “責心.責氣”라는 말로만 얘기했을 뿐 구체적인 원칙이나 원론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醫學의 영역이 아닌 哲學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醫學은 인간에게 있어서 필연적 측면을 다루고 哲學은 인간의 자유적 측면을 대상으로 한다. 인간의 궁극적 구원은 철학에 있지 의학에 있지 않다. 허나 의학이 인간의 性情까지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면 인간존재의 상당한 부분을 점유할 수 있다.

 

42. 이제마의 四象의학의 위대한 점은 궁극적으로 병증약리에 있다. 그런데 그의 병증약리는 궁극적으로 哀怒喜樂의 性情조절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면 四象醫學은 그 전체가 정신과학의 영역에 포섭되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이제마의 명언을 살펴보라. 善古之醫師, 不知心之愛惡所欲喜怒哀樂偏着爲病, 而但知脾胃水穀風寒暑濕觸犯者爲病. 이제마는 모든 병의 근본원인을 희노애락의 편착에 귀의 시키고 있다.

 

43. 결론적으로 精神은 가이스트(geist)도 아니요 코기탄스(cogitans)도 아니다. 精神은 精과 神이며 그것은 하늘(天)과 땅(地)일 뿐 이다. 다시 말해서 하늘과 땅의 一氣가 인간존재일 뿐 精神이 몸에서 분리되는 독립적 실체일 수가 없다. 精神은 上下焦의 合이며 그것이 바로 몸(MOM)이다. 따라서 서양의 싸이코소마팈(psychosomatic, 병이 情意에 의해 영향을 받는)에 관한 모든 논의는 이러한 기본적인 이원론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싸이코와 소마(soma, 신체,육체)는 별개의 존재성을 가지고 있는 후에 상통되는 것이 아니라, 원래 몸의 방편적 두 측면일 뿐이다. 싸이코와 소마는 하나의 몸으로 간주되어야 하며 그것은 모두 肺脾肝腎에서 해결되어야 하며 모두 肺脾肝腎의 性情에 관한 藥理로 해결되어야 한다.

 

44. 허나 이제마에게서도 그러한 약리의 해결이 心의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고 보지는 않았다. 心의 도덕적 기능은 철학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다.

 

45. 한의학의 미래는 음양과 오행의 올바른 결합에 存한다. 음양론은 이제마의 사상의학이 소상히 밝혔고 오행론은 사암의 오행침술이 소상히 밝혔다. 허나 양자는 모두 전과학적 미숙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것을 문자그대로 신봉하는 것은 미신일 뿐이다.

 

46. 한의학은 현재 과학의 자격이 없다. 과학을 구성할 수 있는 어휘가 없다. 그렇다고 서양사람들이 말하는 과학이라는 어휘속으로 한의학이 환원되어야만 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47. 한의학은 현재 통찰(insights)일 뿐이다. 이 통찰은 새로운 과학을 창출해내야 한다.

 

48. 이러한 새로운 과학의 힌트는 모든 “보편과학”의 가능성에서 올 수 있으나 생물학보다는 물리학이나 천문학의 성과에 더 의존하리라고 본다. 생물학은 경험과학의 유치한 답보상태에 묶여 있다. 생물학에는 땅만 있고 하늘이 없다. 서양의학은 유형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무형에 대한 과감한 가설을 세우고 있질 못하다. 서양의학의 도약의 한 계기가 한의학의 통찰이 될 수 있으리라는 나의 믿음은 나만의 믿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희망이며 기대일 것이다.

 

49. 그런데 한의학을 말하는 자들이 너무도 진리에 대한 원리적이고 개방적인 인식이 부족하다. 그들은 모든 과학의 가능성에 열려있어야 한다. 한의학이 한의학이고자 하는 모든 논리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하며 한의학도는 한의사들이 상식적으로 걷는 길에서 뛰쳐나와야 한다. 한의학의 어휘를 부정하고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50. 이상은 내가 유영수 교수의 초청으로 1995년 6월 7일 원광대학교 한의과 대학 본 3 강의실에서 오후 3시반부터 7시반까지 4시간 연속으로 강의한 내용의 요약이다. 이 요약을 레포트로 제출한다.

1995년 6월 8일 오후 5시 40분 전주 원광 한방 병원 7층 고시실에서 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