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거부하는 의식으로 살아라(?)
⇒ 죽음에 순응하는 마음이 병을 물리친다
사람들은 왜 삶은 좋아하고 죽음은 싫어할까. "이 X X 너 죽인다!" "너 죽어볼래?" "죽여 버릴까 보다! "이렇게 귀에 익숙한 욕은 '죽음'은 나쁜 것, 무서운 것의 이미지와 함께 기피해야 할 무엇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매일 죽어야 사는 것이다. 무슨 성경의 말씀이 아니라 생리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성인의 말씀에 죽어야 산다는 의미는 나(ego)의 죽음이고, 생리학적 죽음은 필연적인 생명의 유지 원인이다.
보라! 우리는 살기 위해서 숨을 쉰다. 들이쉰 숨이 나가야 사는 법. 나감은 죽음이 아니고 무엇인가? 먹은 음식은 똥오줌으로 배설되어야 우리가 살 수 있듯이 우리의 지식섭취도 망각의 작용이 있으므로 가능한 것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많을수록 병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어느 날 피치 못할 가까운 이의 죽음 앞에서 심각한 심적 동요를 일으킬 때야말로 암 같은 중병이 방문하기 좋은 시기다.
수용하는 태도가 병을 이긴다
칼 사이먼트이라는 미국의 암 전문박사는 환자 중 특별한 신념을 가진 사람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확신하거나 죽음조차 적대시하지 않는 수용성의 환자는 확실히 암으로부터 빨리 해방되거나 임종 시 고통 없이 죽는다고 증언했다.
일반적으로 노인의 암은 그 발전 속도가 느리다. 젊은이의 암은 악화되기 시작하면 급속히 발전하여 순식간에 생명을 앗아가는데, 노인들의 암은 마치 노인의 느린 행동처럼 더디게 악화된다.
실제로 순순히 늙음을 인정하는 노인들은 곱게 죽음을 준비하여 분수에 맞지 않는 욕망을 일으키지 않는다. 바로 젊음과의 비교, 건강한 때와의 비교가 암을 충동질하는 지원세력이 되는 것이다.
◆ 김홍경의 잠깐 한마디 ◆
죽음과 포기의 아름다움
옛날 한 구두쇠 앞에 도시가 나타났다. 인색하기 짝이 없는 이 노랭이 영감은 돈 달랄까 두려워서 등을 보이고 들어가려 했다.
"어이! 부자양반! 더 돈 벌게 해줄 비방을 일러주러 왔네."
흠칫 놀라는 구두쇠에게, "손을 좀 주먹 쥐어 보시지! 그 주먹이 안 펴지면 병신 아닌가. 이 사람아! 또 펴진 손 안 쥐어져도 불구자 아닌가?"
이 노랭이는 그 순간 퍼뜩 깨달은 바 있었다. 쥘 줄만 알았지 펼 줄 모르던 인생의 어리석음에 눈을 떴다 이거다. 그로부터 베풂의 공덕으로 후덕함을 쌓아 더욱 부유해지니 이야말로 죽음과 포기의 아름다움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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