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백두대간 22 저수령 촛대봉 투구봉 시루봉 배재 싸리재 흙목정상 뱀재 솔봉 모적령 묘적봉 도솔봉 삼형제봉 죽령

별꽃바람 2016. 6. 10. 12:45

백두대간 산행 22번째다. 

이번 구간은 저수령에서 죽령에 이르는 구간이다. 


장마가 오기 전에 산행을 하려고 하니 마음이 바쁘다. 우리가 산행을 준비하면 꼭 전날 비가 와서 맑은 대간경치를 보기 어려웠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ㅠㅠ 이번 산행은 벌재 아래에 있는 방곡토속식당에서 민박을 하고 저수령으로 이동하여 산행을 했다. 새벽에 평소 안 먹는 컵라면을 하나씩 먹고 5시 반에 저수령으로 이동했다.


새벽에 비가 온 탓에 조망도 좋지 않고 나무잎에 묻은 물방울 때문에 비를 맞는 것과 같은 상태로 산행을 했다. 다행인 것은 반바지를 입고 갔기에 신발에 흙이 들어오지 않도록 스패츠를 하고 간 덕분에 신발 속으로는 빗물이 적게 들어왔다는 것이다. 발목 스패츠 새로 산 덕을 크게 보았다.


산행길은 푹신하게 낙옆이 쌓인 완만한 길의 연속이다. 도솔봉 구간을 제외하고는 험한 구간도 거의 없는 육산지대다. 도솔봉 구간도 계단 등 안전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불편한 점이 없었다. 덕분에 산행속도가 빨라서 예상보다 2시간 이상 빨리 죽령에 도착했다. 조망이 좋지 않아서 사진을 적게 찍은 것도 한 몫했다.


고도표와는 달리 급한 곳이 없어 무릎에도 큰 무리가 가지 않는 구간이다. 산행이 끝나고 제천에서 커피학원을 운영하는 친구를 불러 저수령까지 이동했다. 저수령에서 차를 회수하여 제천으로 이동했다. 커피학원을 구경하고 차 한잔 얻어 먹고 귀경했다. 다음날 진도 출장만 없었으면 저녁을 함께 하고 왔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다.


다음 산행구간은 소백산 종주코스인데 거리가 워낙 길어서 벌써부터 긴장된다. ^.^



이하 산행 기록이다.


1. 산행일시 : 2016년 6월 7일 5시 43분 - 15시 40분(9시간 57분, 사진 및 휴식 1시간 15분 포함) 

2. 산행코스 : 저수령 - 촛대봉 - 투구봉 - 시루봉 - 배재 - 싸리재 - 흙목정상 - 뱀재 - 솔봉 - 묘적령 - 묘적봉 - 도솔봉 - 삼형제봉 - 죽령
3. 도상거리 : 19.55km(트랭글 기준)

4. 교통 : 서울에서 자가용으로 벌재 아래 방곡토속식당으로 이동 민박, 저수령으로 이동 죽령까지 산행 후 친구차로 저수령으로 이동하여 차량 회수

5. 동반 : 유리공주

6. 세부 일정(날씨는 흐리고, 전날 비로 시원하나 짙은 안개)

- 저수령 출발 : 5시 43분 

- 촛대봉 도착 : 6시 6분(사진 4분)

- 투구봉 도착 : 6시 17분(사진 2분)

- 시루봉 도착 : 6시 38분(사진 2분)

- 야목 갈림길 : 7시 16분

- 배재 도착 : 7시 41분(휴식 5분)

- 흙목정상 도착 : 8시 15분

- 철탑 도착 : 8시 45분

- 솔봉 도착 : 9시 30분(사진 및 휴식 10분)

- 모시골 마을 갈림길 : 9시 59분

- 첫 나무의자 쉼터 : 10시 7분(3개소가 있음)

- 마루금 치유 숲길 안내판 : 10시 29분

- 묘적령 표지석 도착 : 10시 33분(사진 2분)

- 묘적령 도착 : 10시 36분

- 묘적봉 전망바위 : 10시 44분(사진 및 휴식 15분)

- 묘적봉 도착 : 11시 17분(사진 2분)

- 도솔봉 전망 바위 도착 : 11시 58분(사진 4분)

- 도솔봉 도착 : 12시 16분(사진 3분)

- 도솔봉 아래 전망바위 : 12시 28분(휴식 15분)

- 전망바위 : 13시 25분(사진 4분)

- 로즈퀸님 위령 표지석 도착 : 14시 6분

- 죽령 상부 약수터 도착(음용불가) : 14시 59분

- 죽령 하산길 전망바위 : 15시 20분(휴식 10분)

- 죽령 도착 : 15시 40분

- 죽령 출발 : 16시 01분

- 저수령 도착 : 16시 35분


7. 연락처 및 만난 사람

* 제천에서 커피학원하는 친구 

* 이 날도 산행하는 사람은 한명도 만나지 못했다.


8. 소요비용 : 총 141,800

- 방학동-저수령-방학동 주유비 : 45,000원(다음 지도 기준)

방학동-저수령-방학동 통행료 : 20,800원(다음 지도 기준)  

- 방곡토속식당(043-422-3636) 저녁 식비 : 31,000원

- 방곡토속식당 숙박비 : 30,000원

- 기타 산행 준비물 비용 : 15,000원(컵라면, 과일 및 빵 기타) 


이하는 사진을 보면서 산행 코스을 설명한다.



이번 산행의 트랭글 기록이다.



산행 고도표 및 속도 그리고 웨이포인트 기록이다.


트랭글 산행 지도와 웨이포인트이다.

축소를 한 탓에 웨이포인트가 빠진 것이 많다.


산행 속도 기록이다.

특별히 험한 구간이 없어서 휴식으로 인한 속도 저하가 있지만 크게 차이가 없다.


트랙 파일을 구글어스에 올려 표시한 지도다.

아래에 이번 산행의 트랙파일이 있다.


백두대간 22 저수령 촛대봉 투구봉 시루봉 배재 싸리재 흙목정상 뱀재 솔봉 모적령 묘적봉 도솔봉 삼형제봉 죽령.gpx



요즘 산행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이번 산행 구간의 지도다.


권한철님이 작성한 고도표이다.

폭을 축소해서 고도차가 급한 것으로 보이지만 대부분의 길은 완만하다.


산행 전날 묵었던 방곡토속식당과 주변의 풍경이다.

벌재 아래에 있는데 계곡을 경계로 단양과 문경이 나뉘는 듯하다.


방곡토속식당 앞 계곡의 모습이다.




저수재 주변의 각종 표지석과 조형물의 모습이다.

지난번 산행에서 인증샷을 남겼으므로 이번에는 패스


저수령에서 올라서면 만나는 첫번째 봉우리 촛대봉이다.

나무가 무성하여 봉우리라고 보기에는 좀 허접하다.


촛대봉에서 조금만 진행하면 만나는 투구봉이다.

정상석은 없고 보이는 바와 같이 허접한 표지판이 있을 뿐이다.


이번 산행길은 보는 바와 같이 대부분 푹신하고 완만하여 걷기 편하다.


저수령에서 3킬로미터 진행하면 시루봉에 도착한다.


거대한 잣나무 군락을 지나고...


야목 갈림길인데 배재라는 이름이 보인다.


배재의 공터에는 위에 보이는 바와 같이 나무 사이에 그네를 매달아 놓았다.

생각보다 재미있어 유리공주와 한번씩 타 보고 출발했다.


산봉우리 이름이 흙목정상? 좀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막 활짝 핀 찔레꽃이 향기를 내 뿜고 있어서 산행이 상쾌하다.

장사익님의 찔레꽃이 생각나서 볼 때마다 특별한 애착이 간다.


산길 옆에 버티고 있는 철탑이 안개속에 묻혀 있다.

엄청난 코로나가 전기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산에서 만나는 수 많은 꽃들 중 하나. 

시간이 나면 효빈님의 블로그에 가서 공부를 해서 이름을 적어 알려 드리고 싶다.

지금은 시간이 없다. 왜 이렇게 바쁜지? ㅠㅠ


솔봉 정상의 모습이다.

여전히 나무가 무성하여 봉우리라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산행을 절반도 진행하지 않았는데 옷은 완전히 이슬에 젖었고, 신발은 거지꼴이 다 되었다.


엉겅퀴와 쥐똥나무 꽃이 활짝 피었다.

특히 쥐똥나무 꽃 향기가 매우 진해서 걸음을 멈추고 향을 맡았다.


맛있게 익은 산딸기도 따 먹고 여유있는 산행이다.


꽃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눈을 즐겁게 해주는 다양한 꽃들 덕분에 행복했다.


산책 코스인 듯 나무의자가 몇군데 놓여 있다.


아니나 다를까 마루금치유숲길이라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코스가 매우 완만하고 낙옆이 두껍게 쌓인 길이라 걷기에는 딱이다.


묘적령 표지석, 

실제 묘적령은 약간 아래에 있지만 예천군에서 이곳에 설치해 두었다.

묘적령부터 소백산국립공원이 시작된다.


위 묘적령 표지석 뒷쪽 아래 안부에 있는 묘적령의 각종 이정표와 안내판의 모습이다.

소백산국립공원북부사무소 관할이다. 그래서 이정표도 소북으로 표시되어 있다.



묘적봉 아래에 있는 전망바위인데,

누군가 흉하게 여러곳에 위처럼 붉은 페인트로 묘적봉이라고 표기해 두었다.

가급적이면 자연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최선인데....ㅠㅠ


묘적봉 아래 전망바위에서 지나온 능선을 배경으로 한컷 남겼다.


묘적봉 정상에서 한컷 남기고 출발했다.


묘적봉에서 하산하는 길은 국립공원답게 계단이 나타난다.


예전에 산행하던 사람들이 샛길로 가다가 조난을 당하는 문제로 중간에 목책으로 막아 놓은 부분이 있다.



이번 산행에서 가장 높고 전망이 좋은 도솔봉 정상 주변 절벽의 모습이다.

밑에서 보면 멋진데 막상 올라가면 육산처럼 느껴진다.


도솔봉 정상의 모습이다.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전망이 매우 좋은데 이 날은 안개 때문에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도솔봉에서 내려오다가 돌아본 도솔봉의 모습이다.


삼형제봉으로 향하는 도중에 도솔봉을 배경으로 한컷 남겼다.


이번 산행구간에는 백두대간 산행 중 운명을 달리하신 산악인을 추모하는 표지석이 2군데 있다.

이곳과 샘터 주변에 하나가 더 있다.


소백산국립공원의 주능선에서 조금 떨어진 흰봉산 산행을 했던 분들 중 조난 사고가 있어서 이처럼 금지판을 설치해 놓고 길을 폐쇄했다.


아주 완만한 하산길의 모습이다.


죽령 상부에 있는 약수터의 모습인데 깊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음용 불가란다.

아무래도 산짐승들이 많이 다녀서 그런 듯 하다.


약수터 길가에도 산행 중 운명을 달리한 산악인을 기르는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다.


잣나무 군락을 지나는 곳인데 다소 급한 내리막이다.


죽령에서 올라가는 길에 지나가는 사람의 수를 세는 설비와 야간 산행을 막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죽령 주변의 각종 표지석과 기념 시설물, 주막과 특산물 판매점이 있다.

평일임에도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이 있고 휴일에는 더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고 한다.


귀경하는 길에 잠시 방문한 제천의 커피학원의 모습이다.

고교 동창이 운영하는 학원인데 매우 깔끔하게 잘 정리가 되어 있다.


이하 제이캠프 백두 3차 우보선생 블로그 펌.


저수령 부터는 소백산 줄기이다. 저수령에서 부터 소백산 비로봉(1.439m)을 잇는 봉우리들은 마치 하나의 산인듯 서로 부르며 다가서고 있다. 봉우리들은 소백산의 최고봉인 비로봉(毘盧峰)을 향하고 있다. 비로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줄임말로 몸의 빛 지혜의 빛이 법계에 두루비치어 가득하다는 뜻이다. 즉 부처의 진신(眞身)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니 저수령에서 고개숙이고 산길로 들어서면 불 밝혀 인도하는 촛대봉을 만나게 되고 땀흘려 올라가면 묘적봉(妙積峰)과 도솔봉(1.314m)을 오르게 된다. 묘적은 참선하여 삼매경의 오묘한 경지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도솔은 장차 부처가될 보살이 사는 곳을 의미하는 것이니 산길은 그저 산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수행의 길이기도 하다.


붉밝혀 진리의 길을 인도하는 춧대봉을 지나 참선을 통해 삼매경에 든후 도솔천에 들어가는 길인 것이다. 그렇게 도솔봉을 지나면 바로 사바세계에 내려오신 부처님을 상징하고 세속에 드러난 진리를 상징하는 연꽃이 봉오리를 틔운 연화봉이다. 그 연화봉에서 진리의 삶을 이루게되면 바로 부처님을 만나게 된다. 부처님의 진신인 비로봉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소백산 비로봉을 향하는 산행은 그것 자체가 수행이요 깨달음이니 이것이 바로 하나의 산이요 하나의 진리요 하나의 깨달음이요 하나의 산행이며 하나의 마음이다. 


싸리재라는 이름은 신라시대에 지어진 이름으로 싸리재는 싸리고개이다. 싸리는 신라의 이두문자의 해석으로 사리 솔이(松)므로 솔재라고 부를 수 있어나 옛부터 사리로 불러 왔기때문에 그대로 부르는 같다.


단양지역에는 순 우리말 지명이 많이 남아있다. 흙목재는 한자로 풀이하면 토항(土項)이다. 중국의 풍수지리에 밝은 박성이라는 사람이 산천에 제사를 지낼때 향을 피운 곳이라고 하여 토향(吐香)이라고 하는데 토향이 토항으로 변이음이 되어 우리말 풀이로 흙목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또한 흙목재 밑에 예천군 상리면 두성리에 흙목 마을이 있다.


도솔봉(兜率峰)은 경북 영주시 풍기읍과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도계에 위치하여 연화봉비로봉 국망봉과 함께 소맥산 국립공원에 속한다. 대동여지도에는 도솔산이라 표기되어 있는데 도솔천에 따온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도솔산에는 도솔산성이 있는데 대동여지도에 따르면 동강성이라고 했다.그런데 이성은 한국전쟁당시 모두 사라 졌다고 한다.


도솔천(兜率天)은 불교에서 말하는 욕계육천(慾界六天)중 사천(四天)이다. 통속적인 어원 해석으로는 만족시키다의 의미로 설명하여 지족 묘족 희족 희락(知足,妙足,喜足,喜樂) 등으로 번역한다. 장차 부처가될 보살이 사는곳으로 현재는 미륵보살이 여기에서 설법하며 남섬부주에 하생하여 성불할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한다.


따라서 도솔천은 미륵보살의 정토로서 정토신앙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천(四天)은 수미산 꼭대기에서 12만 유순되는 곳에 있으며 이곳에서 미륵보살이 산다. 여기에 내원과 외원이 있는데 내원은 미륵보살의 정토이며 외원은 천계대중이 환락하는 장소라고 한다.

 

유순은 예전에 인도에서 거리를 재던 단위로서 소달구지가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로서 80리면 대유순 60리면 중유순 40리면 소유순 세가지가 있고 정토는 부처와 미륵보살이 사는 곳으로 번뇌와 구속에서 벗어난 아주 깨끗한 세상을 말한다.

 

죽령(竹嶺)은 충북 단양군 대강면과 경북 영주시 풍기읍을 잇는 고개이다. 삼국사기에 신라 아달라왕 5년 3월에 이 길을 열었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아달라왕 5년 죽죽이라는 사람이 왕의 명을 받고 죽령을 개척하고 지쳐서 순직했고 고갯마루에는 죽죽을 위로하기위하여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죽령은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으로 삼국시대에 전쟁이 잦은 곳으로 고구려가 죽령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장수왕 말년 신라 진흥왕12년에 거칠부등 여덟장수를 명하여 백제와 연합해 고구려를 침공하여 죽령 이북 열 고을을 탈취했으며 그뒤 영양왕 1년 고구려 장수 온달장군이 왕께 자칭하여 죽령이북 잃은 땅을 회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한 삼국사기의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도 죽령은 군사적 요충지 였음을 짐작 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여 우왕 8년과 9년에 왜구가 죽령을 넘어왔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남아 있다. 단양 문화원이 펴낸 단양 민속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신라시대때 부터 죽령에는 나라에서 지내는

제사(國行祭)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죽령사라는 산신사당이 있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보면 춘추로 나라에서 향과 축문을 내려보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지금의 죽령사를 짓고 산신제를 지내게 된것은 조선 중기로 이때 신주인 산신이 바로 다자구 할매다. 


당시 나라에 바치는 세금은 삼베및 무명 엽전등을 지고 이고 죽령을 지나야 했는데 죽령 고갯마루에 산적들이 가지고 간 세금을 빼앗고 사람을 헤치지만 관병들이 이를 토벌하지 못했다. 그때 두아들을 잃은 할매가 나타나 토포군의 토벌작전에 할매가 작전을 구사했는데 할머니는 산적 소굴로 들어가 두 아들을 잃었는데 아들 이름이 하나는 들자구야이고 다른 하나는 다자구야라고 했다.


관군과의 암호 형식인 들자구야는 들자고 있으니 기다리라는 신호이고 다자구야는 다 자고 있으니 공격하라는 신호였다. 그 할머니의 다자구야 신호를 받은 관군이 들이 닥쳐 산적을 섬멸 했다는 이야기다. 이후 노파가 죽어 산신령이된 다자구 할머니를 기려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때 일제는 이 땅의 모든 국행제를 금지 시켰다. 그러나 죽령 산신제는 마을 사람들의 손에 의해 근근히 맥을 이어왔다. 그 이후 김순재라는 면장이 부임하면서 죽령산신제를 지내는 재산을 빼앗아 사람들에게 분양해준뒤 다자구 할매 산신 재산이 없어 졌다.


그 이후 마을 사람들이 군청이나 문화원에 돌려 줄것을 사정했지만 이루어지지 않고 지금은 약 50만원 정도의 군 지원금으로 겨우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백두대간 22 저수령 촛대봉 투구봉 시루봉 배재 싸리재 흙목정상 뱀재 솔봉 모적령 묘적봉 도솔봉 삼형제봉 죽령.gpx
0.39MB